조선시대도 코로나가?…후기학자 윤기, 한시에 “중국에서 시작된 돌림감기”
조선시대도 코로나가?…후기학자 윤기, 한시에 “중국에서 시작된 돌림감기”
  • 이상명 기자
  • 승인 2020.03.05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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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진흥원 웹진 담(談) “중국 독감이 조선에 퍼져 10명 중 2명 사망”
(사진=한국국한진흥원 캡쳐)
(사진=한국국한진흥원 캡쳐)

조선 후기 학자 무명자(無名子) 윤기(1741~1826)의 한시에 ‘코로나19’와 빼닮은 조선시대 돌림병이 적혀있어 화제다. 

5일 웹진 담(談)에 따르면 한국국학진흥원이 ‘본원적 공포 vs 만들어진 공포’란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을 펴냈다. 

웹진 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및 사망자가 날마다 늘어나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감염 공포를 주제로 삼았다.

특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와 과거 선현들의 모습에서 감염병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공포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할 요소를 공유하고자 이번 웹진을 기획했다고 전해진다. 

감염병이 창궐할 때 병 자체가 그 위험성이라면 전염될까 전전긍긍하는 만들어진 공포는 그 위험성에서 파생된 공포라는 것이다. 

실제로 코로나19가 대유행하자 격리 시설이 위치한 지역의 주민들이 대대적인 반대 시위를 하기도 하고, 대중교통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나도 모르게 기침이라도 나오면 감염자 취급하듯 곁에 있던 사람들이 홍해처럼 갈라지기도 한다. 

손만 잡아도 감염된다, 옆에 서있기만 해도 감염된다 등 비이성적인 공포는 가짜뉴스로 둔갑해 확산되고 있다. 

조선 시대 전염병이 창궐하던 시절도 현재와 다르지 않았다. 웹진 담은 ‘조성당일기’ 저자인 김택룡의 이야기를 담아 이를 뒷받침했다. 

1616년 7월17일 ‘조성당일기’ 김택룡 집으로 정신이 나간 사내가 뛰어 들어와 발광을 부렸는데 이 사내는 정희생이라는 양반 출신의 자제로 얼마 전 고을에 전염병이 돌자 온 마을 사람들이 그를 외면해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난동을 부린 것이다. 

김택룡이 겨우겨우 달래 돌려보냈지만 이날 밤 정희생의 친모가 밤나무에서 목을 매 자살하고 말았다. 

오늘날처럼 과학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해도 전염병의 공포가 기승을 부리는데 의학 수준이 현저히 낮은 조선 시대 고을에서 창궐하는 감염병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란 환자를 외면하고 멀리하는 것 외에는 없었을 터.  

김택룡은 이처럼 오랜 세월 살아온 고을에서 외면당하고 내쫓겨진 이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안타까운 사연을 일기에 기록해뒀다. 

마을 공동체에서 유기적으로 살아왔던 사람이 한 순간에 겪은 격리라는 공포, 추방당한 이들이 겪은 소외감과 처절함 등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헤아리기엔 그 고통은 헤아릴 수 없을 듯 하다. 

김택룡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겨내기 어려웠으나, 그래도 계속 살아갈 힘은 서로를 돕는 데 있다”는 훌륭한 글을 남겼다. 

전염병이 맹위를 떨치는 사이 퍼져가는 공포와 경계심은 동서고금이 마찬가지지만 병에 대처하는 대응력은 이처럼 모두 달랐다.

현재 전 세계는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보내고 있는 가운데 조선 시대에도 중국에서 건너 온 감염병으로 홍역을 치른 사례가 있어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 학자 무명자 윤기는 한시에서 “옛날에도 그랬다지만 올해처럼 심한 해는 없었네. 염병도 아니고 마마도 아닌 것이 온 세상 끝까지 덮쳤어라. 돌림감기라 억지로 이름 붙였지만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네. 열흘 만에 천하에 퍼져 풍우 같은 기세로 몰아쳤네”라 적었다.

윤기가 한시로 남긴 돌림감기는 1798년 겨울 대유행한 독감으로 현재의 ‘코로나19’와 사뭇 닮았다. 

윤기는 이어 “듣자니 중국에서 시작해 처음엔 더 많이 죽었다지. 전염병의 여파가 조선까지 미쳐 곳곳마다 맹위를 떨쳤네”라고 당시 상황을 표현했다. 

이 독감은 중국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청나라 황제 건륭이 사망하기까지 했다. 조선으로 퍼진 중국발 독감은 열흘 만에 한양까지 번져 치사율은 20%에 이르렀으며 급기야 조선팔도에 돌림감기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의료 시설이나 방역 수준이 열악했던 조선 시대에도 감염병이 도는 고을을 돌본 관리가 있었고 환자들을 치료하려 애쓰던 의관들이 있었다. 

이들의 모습에서 오늘날 땀에 흠뻑 젖은 방역복 사이로 식사할 틈, 화장실 갈 틈도 없이 환자들을 돌보는 의료인들의 모습이 엿보인다. 

vietnam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