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국토부 '나 몰라라 홍보'…기업 밥줄 끊길라
[기자수첩] 국토부 '나 몰라라 홍보'…기업 밥줄 끊길라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0.02.04 15: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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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통해 뉴스를 보던 한 초등학생이 "저 회사는 나쁜 회사네. 난 저 회사 거는 안 살 거야"라고 말한다.

당시에는 웃고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민간기업 처지에서는 섬뜩할 수 있는 말이다.

기업은 '좋은 이미지'를 만드는 데 막대한 비용을 투입한다. 멋진 광고를 만들어 회사와 상품을 홍보하고, 권위 있는 상을 받기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러나 공들여 쌓은 좋은 이미지도 무너져 내리는 것은 한순간이다. 각종 사건, 사고 등에 연루되는 순간 지난 노력은 수포가 된다.

이미지를 망치는 일은 기업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제3자의 과오로 억울하게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국토교통부가 언론에 배포한 '사망사고 발생 건설사 명단'은 정부의 잘못으로도 기업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국토부는 이 보도자료에 '선제적 대응으로 안전사고 예방 주력'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그러면서 건설사별 사망사고 현장과 사망자 수를 공개했는데, 이 통계는 표면상 '안전 부주의로 인한 사망 사고'를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망 사고'로 언급된 사례를 하나씩 확인한 결과, 개인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경우나 퇴근길 개인 부주의로 추정되는 사망 사고도 포함돼 있었다.

국토부가 건설사 잘못으로 보기 어려운 사망까지 한 데 묶어, 이 모든 것이 안전관리 소홀에 의한 사고인 것처럼 포장한 것이다.

지난해 11~12월 공사 현장에서 사망자 2명이 발생한 현대건설에 대해서는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건설사', '불명예'라는 표현까지 가져다 붙였다. 현대건설 현장 사망자 중 한 명은 개인 지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지만, 국토부는 이런 사실을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더 황당한 것은 국토부가 이런 식의 자료가 기사화됐을 때 해당 건설사에 큰 피해를 줄 수 있음을 인식했음에도 즉각적인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도자료를 수정해 배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추가 설명이나 해명자료를 통해 사실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만 총 33건의 설명·해명 보도자료를 낸 국토부지만, 자신들의 잘못으로 민간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한없이 소극적이었다.

문제의 보도자료는 "2019년에 이어 2020년에도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집중점검하는 '징벌적 현장점검'을 꾸준히 실시해, 업계가 선제적으로 안전사고를 예방하도록 유도하겠다"라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인터뷰로 끝을 맺는다.

자료에 언급된 건설사 중 일부는 전후사정은 무시된 채 졸지에 '안전 불감증 회사' 이미지를 갖게 됐다. 동시에 '건설노동자의 생명을 더욱 안전하게 지키겠다'는 국토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도 추락했다.

흔히 "기업은 이미지로 먹고산다"고 한다. 정부의 어설픈 정책 홍보가 안 그래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기업들의 밥줄마저 끊을 판이다.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