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한민국 초중고 운동선수들의 현재 자화상
[데스크 칼럼] 대한민국 초중고 운동선수들의 현재 자화상
  • 신아일보
  • 승인 2019.12.1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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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사회부 부국장
 

2000명이 넘는 초중고생 운동선수가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학생선수가 있는 전국 5274개교 초중고 선수 6만3211명을 대상으로 인권실태를 조사한 결과 이같이 드러나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번 조사 결과 6만3211명 중 5만7557명이 설문조사에 응답했고, 이중 3.8%인 2212명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 응답자 중 9035명은 언어폭력, 8440명은 신체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초중고로 구분했을 때 초등학생 선수 중 3423명이 폭언과 욕설, 협박 등 언어폭력을 겪었고, 언어폭력 경험자 중 69.0%는 코치나 감독 등 지도자가 주요 가해자라고 응답했다.

438은 성폭력 피해를 봤으며 이 중 절반이 넘는 252명이 괜찮은 척 그냥 넘어가거나 아무런 행동을 못 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처했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선수 중 신체폭력 경험자는 2320명(12.9%)이었고, 주요 가해자는 지도자(75.5%)와 선배 선수(15.5%) 등이었다. 신체폭력을 당한 뒤 초등학생 선수의 38.7%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답했고, '도움을 요청했다'는 반응은 16.0%에 불과했다.

중학생 선수는 응답자의 3288명가 신체폭력을 경험해 일반 중학생 학교 폭력 경험 비율(6.7%)보다 2.2배였다. 중학생 선수도 신체폭력을 당한 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21.4%나 됐다. 중학생 선수 중 1071명은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누군가 자신의 신체를 강제로 만지거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고 강간 피해(5건)나 성관계 요구(9건)를 당한 사례도 있었다. 가해자는 주로 동성의 선배나 또래였고, 피해 장소는 숙소나 훈련장이 많았다. 피해 시 대처는 초등학생 선수와 마찬가지로 반 이상이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고등학생 선수는 2832명(16.1%)이 신체폭력을 겪었다. 이는 일반 고등학생 학교 폭력 경험 비율(6.3%)의 2.6배 높았다. 또 2573명(14.6%)이 언어폭력을 경험했다. 고등학생 선수 중 703명이 성폭력을 경험했으며 절반 이상(55.7%)이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이같은 소극적 대처는 어려서부터 수 년 동안 밀접하게 접촉하며 지도받은 선수가 폭력이나 성범죄에 대항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 운동 그만하고 싶어' 라는 말은 선수들에게는 최악의 말로 '운동 스톱'은 곧 사망선고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지도자에게 자칫 잘못 보이기라도 하면 경기 출전, 학교 진학 등에 불이익을 당할까 봐 선수들이 혼자서 전전긍긍 속앓이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에다 폭력에 대한 피해도 심각하지만 폭행 피해를 알린 선수들은 2차, 3차 피해로 다시 상처를 받게 된다. 먼저 폭력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또한 피해 사실을 알린 이후에 선수들 사이의 따돌림까지 당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신고 이후 선수 생활을 마감하게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문에 선수들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고, 불이익이 두려워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금메달을 따지 못해 시상대에서 침울한 표정을 짓는 선수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메달 획득을 위해 수 없이 흘렸던 땀방울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격려하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동메달을 목에 걸고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우리가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일을 이미 그르치고 난 후 후회한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생 운동선수들이 마음 놓고 학업과 운동에 매진할 수 있는 엄격한 제도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김종학 사회부 부국장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