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의 양말이 새까맣다. 물론 아이니까 양말이 더러워지는 것은 맞지만 한 달에 한번 유독 까만 날이 있다. 바로 소방대피훈련이 있는 날이다.
화재상황을 가정해 최대한 몸을 숙이고 입을 막은 채 어린이집 건물 4층부터 1층 외부로 빠져나오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위험하지 않도록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는 연습하기 때문에 양말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다.
기어코 나쁘지 않은 더러움이다.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화재 등의 사고와 맞닥뜨렸을 때 허둥지둥 하는 것보다 본인이 어떻게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더 큰 피해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들을 이끄는 교사들에게도 매달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의식이 아닌 매우 중요한 훈련임을 인지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26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은명초등학교에서 큰 불이 났다. 초반 보도에서는 하교 후 시간이라 학생들은 없었다고 했지만 오후 늦게 보도에 따르면 방과후 수업을 위해 남아있던 학생 116명과 유치원생 12명, 교사 25명 등 총 156명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이 화재가 학교 건물 인근 쓰레기 집하장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보고 조사하고 있다. 쓰레기 집하장에서 발생한 불이 옆 차량으로 옮긴 후 별관 건물 5층까지 모두 연소한 것이다.
화재 직후 별관에서 방과후 수업을 진행하던 교사 권모씨와 방과후 강사 김모씨는 학생들을 먼저 무사히 밖으로 대피시켰다. 이 두 교사는 모든 아이들이 대피한 것을 확인했지만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장실로 대피했다.
이 학교는 평소에도 학교 소방 훈련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훈련 매뉴얼대로 대피가 잘 이뤄진 것이다. 훈련의 중요성이 새삼 잘 드러난 대목이다.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교사 2명은 5층 화장실로 대피해 있다가 소방관에 의해 무사히 구조됐다. 이 2명의 교사는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은 요즘이다. 매일 뉴스에서는 끔찍하고도 놀라운 소식이 전해지곤 한다. 이중 인재(人災)로 인한 사고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번 사고 역시 큰 인재가 될 수도 있었다. 평소 훈련이 없었다면 아이들과 교사 모두 큰 화를 입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형화재에 인명피해가 없었으니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평소 훈련의 중요성도 새삼 깨닫게 된다. 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 등이 대피훈련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혹시라도 기록에 남겨야 하니 억지로 하는 훈련이 아니길 바란다. 평소 습관이 중요할 때 큰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