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지나간 세월에 대한 기록이다. 어찌 보면 과거이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구속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역사를 중요시한다. 그 이유는 역사를 통해 현재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역사를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록되기를 원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역사를 있는 그대로가 아닌 자기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일본은 광개토대왕비 비문을 왜곡하여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퍼뜨렸다.
중국 역시 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의 역사와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는 시도가 매우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벌어진 역사왜곡의 단면이다.
역사왜곡은 국가차원 뿐만 아니라 개인 차원 또는 집단 차원에서 이루어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 불리한 사실은 삭선하고 유리한 사실들만 나열하는 방식을 취한다. 때론 전체가 아닌 일부만을 강조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한다.
한 유명인이 공영방송에 출연하여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 “미국의 괴뢰”라고 폄훼하면서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라 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더구나 “신탁통치 반대로 인해 통일이 되지 못하였다”라는 발언도 여과 없이 전파를 탔다.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는 미·영·러 등 3개국 외상에 의한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처음으로 거론되었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좌우 할 것 없이 모두가 조선의 자주 독립을 외치는 반탁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나 소련의 사주를 받은 남로당 계열이 갑자기 찬탁으로 돌아서면서 조선은 격랑에 휩싸였다. 소련은 신탁통치를 빙자하여 한반도 조선을 공산화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역사적 사실을 두고 반탁이 통일을 저해한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특정 의도를 가진 역사 왜곡이다.
공산주의 체제로의 통일도 통일이라면 할 말이 없어진다.
제주 4.3 사건은 해방 이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 세력들이 주도한 무장 반란이라는 것이 알려진 내용이다. 문제는 그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약 2만5천에서 3만명 가량의 무고한 양민이 진압군에 의해 희생당하였다는 아픈 사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때 희생당한 양민들은 70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 명예회복을 하지 못하고 보상도 받지 못하다가 이제야 겨우 명예회복과 보상의 길이 시작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주 4.3 사건의 시발점은 분명 남로당 세력에 의한 무장 반란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진실이다.
그런데 일부에서 이 사건을 4.3 항쟁으로 칭하고 있다.
누가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위해 항쟁하였다는 것인가? 남로당이라는 공산당 세력이 자유 대한민국 수립을 방해하기 위하여 벌인 사건을 마치 광주민주화운동이나 부마항쟁과 같은 반열에 두고자 하는 저의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