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입증 못하면 상속인에 보험금 지급해야”
“자살 입증 못하면 상속인에 보험금 지급해야”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9.03.25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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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분쟁위, 고의사고 주장하며 지급회피 보험사 관행 제동 
삼성생명 “결정문 받아본 뒤 중재 결정 수용 여부 결정할 것”
삼성 서초사옥.(사진=신아일보DB)
삼성 서초사옥. (사진=신아일보DB)

보험사가 자살 등 고의로 사고를 일으켰다고 명백히 입증하지 못할 시엔 상속인에게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

이에 따라 그동안 막연히 고의사고를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회피해 온 보험사 관행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25일 A씨의 상속인이 삼성생명에 재해보험금 지급을 요청한 사건에 대해 "보험사가 고의사고를 명백히 입증하지 못했다"며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50대 A씨는 지난 2015년 8월 자택 방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1급 장해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다가 숨졌다. 이에 A씨의 상속인은 재해보험금을 청구했지만 삼성생명 측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A씨는 앞서 1996년 재해로 1급 장해진단을 받을 경우 5000만원을 지급 받는 보험에 가입했다.

삼성생명의 주장은 이렇다. A씨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고 의무기록지에 자해·자살로 적혀 있는 등 자살을 목적으로 번개탄을 피워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사고이므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분쟁조정위는 A씨가 사고 발생 20일 전 종합건강검진을 받았고 사고 전날 직장 동료와 평소와 같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점에 주목했다.

또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점과 경찰 기록상 연소물이 A씨가 발견된 방과 구분된 다용도실에서 발견된 점, 그리고 연소물의 종류를 번개탄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보험사가 고의사고(자살)을 명백히 입증하지 못했으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보험급을 지급하라는 구두 권고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 측이 이를 거부해 소비자분쟁조정위에 상정했다"면서 "이번 조정 결정은 '보험사가 일반인의 상식에서 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입증책임을 부담한다'는 대법원 판결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생명 관계자는 "아직 소비자원으로부터 정식 통보가 오지 않았다"면서 "결정문을 받아본 뒤 중재 결정을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자기본법에 따라 설치된 소비자분쟁조정위에서 성립된 결정 내용은 당사자가 수락하는 경우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이 있다. 보험사가 이를 수락하지 않으면 A씨의 상속인은 소송으로 피해 구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nic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