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기초 여건이 중요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의 심리적 분위기가 경제활동의 흐름을 좌지우지한다. 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정부와 공직자의 말과 행동이 늘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최근 경제정책을 보면 원칙보다는 시류에 민감하게 움직이며 임기응변식 땜질 정책이 난무한다는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우리나라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기재부가 최근 잇따라 정책을 번복하면서 신뢰성에 흠집이 생기고 있다. 자칫 시장에 그릇된 신호를 주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4일 신용카드 소득공제 축소 얘기를 꺼냈다가 9일 만에 번복했다. 당초 홍 부총리는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같이 도입취지가 어느 정도 이뤄진 제도에 대해서는 축소 방안을 검토하는 등 비과세·감면 제도 전반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산·서민층 증세라는 여론과 함께 질책의 목소리기 커지자 입장을 바꿨다. 급기야 지난 13일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기재부가 당·정·청 회의를 열어 없던 일로 하면서 올해 말 일몰 예정이던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3년 연장됐다.
뿐만 아니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대해 부정적이던 기재부 예산실도 요즘 입장을 바꿨다.
지난 6일 문재인 대통령이 ‘필요하면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역량을 집중하라는 주문과 12일 국제통화기금(IMF)가 국내총생산(GDP)의 0.5%를 초과하는 추경편성이 필요하다고 지적이 이어지자 예산실은 태도를 180도 바꿔 추경 편성을 사실상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얼마 전까지 올해 예산 증가율(총지출 증가율)이 전년 대비 9.5%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에 필적할 만큼 확장 편성됐고, 아직 올해 예산을 제대로 쓰지도 않았는데 추경을 운운하는 것은 국가재정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 몰지각한 일이라고 주장하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각에서는 이런 기재부의 태도 변화에 ‘존재감이 없다’고 지적한다.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홍 부총리를 겨냥해 기재부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의 눈치를 너무 심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도 나온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수장이던 김동연 전 부총리는 1년6개월의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서 기재부 직원들에게 ‘인기 없는 정책을 펼 수 있는 진정한 용기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그는 논란과 비판이 있더라도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소신을 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김 부총리는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이런 어려움이 상시화 될 수 있다고 진단한 뒤 이런 상황을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고통 분담을 요구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재부가 다시 한번 새겨 볼 조언이다.
[신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