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원조를 자임하는 자유한국당이 위기에 빠졌다. 정당지지율은 각설하더라도 지방선거를 불과 70여일 앞두고 부산, 경남은 물론 지방선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하려는 인사들이 고사하는 가운데 결국 새로운 인재 수혈보다 기존 인물들을 재등판 시키려하고 있다. 이쯤 되면 인물난을 비롯해 총체적 위기라 할 수 있다.
자유한국당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원조보수의 위기임에 분명하다. 이러한 위기는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사태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이명박 전 대통령이 불법자금·다스 등의 문제로 구속되면서 자유한국당의 원조보수라는 정체성과 근거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또 세간의 중평을 통해 지금의 위기의 원인을 당 대표에서 가늠해 보는 것도 한편으로 가능해 보인다.
2017년 2월, 느닷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뇌물 묵고 자살한 분”이라는 등의 직설화법으로 박 정권의 몰락에 의해 멘붕에 빠져있던 보수층에게 인기를 얻으며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고, 대선 직후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까지 선출되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대북 정책을 설명하기 위한 대통령 초청 각 정당 대표 회동에서 홍대표가 보여준 태도는 그나마 보수를 자처한 국민들에게 마저 실망감만 안겨주기 충분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자 대통령께서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그 것을 제게 물으면 어떻게 합니까”하는 반문은 그저 허탈한 웃음만 나오게 만들었다. 적어도 보수를 자임하는 정당의 대표라면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위해서는 순차적인 타결보다 일괄 타결을 해야 하고, 남북 간 대화는 하더라도 사드의 완전한 배치와 한미 연합훈련의 강화를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도는 언급했어야 걸맞지 않았을까.
그 정도 까지는 기대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보수 지도자로서의 가장 기본 덕목인 품격에 문제가 있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홍대표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특히 반복되는 거친 표현은 의도와 별개로 진정성을 의심케 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물론 보수 진영 전체에 자살골을 넣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정치적 대척점에 서 있는 상대라 할지라도 언사는 신중하고 절제되어야 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지만, 심지어 자당 의원들을 향해서 “연탄 가스”운운 하는 것은 어찌 봐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홍대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사건으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보수가 위기에 처했을 당시 박근혜 전 대표가 천막당사로 옮겨간 그 시절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일체의 정쟁을 중단하고, 오직 국민에게 용서를 구하던 진정성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자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한다.
보수는 법치주의와 무한책임 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견지할 때 존립의 의미가 있으며, 진정한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더 이상 여론조사가 허구니 운운하기보다는, 제1 야당이자 수권 정당으로서의 대안 제시가 우선돼야 한다.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를 기대하듯 정부 여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을 기대하거나 독설이나 퍼붓는 우를 범할 때 보수에게 남는 것은 절망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