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빙판 위의 뜨거운 열엿새 동안의 축제가 끝났다.
두 번의 눈물을 삼키고서야 벼르고 별러 얻은 평창 동계축제는 동계올림픽의 역사를 새로이 빛낸 멋진 한 마당이었다. 갖가지 걱정과 근심을 한방에 날려버리고 풍성한 기록을 세우고, 빙설을 무색케 하는 훈담을 남긴 우정과 인류애의 한마당이었다.
천혜의 자연이 고스란히 숨 쉬는 강원도 평창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한국인이 최첨단 IT기술로 다가 올 미래를 미리 보여준 잔치였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어우러진 3차원의 축제였다. 그래서 대한민국 사람들은 영원히 아름답게 남을 이름 영미! 영미! 영미를 외쳤을 것이다.
성대한 잔치의 장막 뒤에는 그날 밤 평창하늘에 빛나던 이름 없는 많은 별들만큼 수많은 말 없는 사람들의 수고가 숨어 있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
축제는 끝나고 무대의 불은 꺼졌다. 배우와 관객과 연출자는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가 각각의 일상과 또 다른 축제의 불씨를 다독인다. 그래서 뜨거운 축제일수록 불 꺼진 무대는 더 허전하고 쓸쓸하다. 그 불씨가 우리의 희망이다.
우리는 평창 올림픽에서 한반도 평화의 불씨를 찾으려 했다. 정확히 말하면 문재인 정부가 스스로의 희망을 국민에게 확실히 알리고 인정을 받으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어렵게 얻은 기회에 세계를 향해 올림픽의 성공과 한반도의 평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한방에 잡는 멋진 모습을 보이려한 흔적이 뚜렷하다.
북한 김정은이 핵 무장으로 세계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상황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대화와 타협을 택한 현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보수진영의 반대를 속속들이 알면서도 이른바 북한 왕조의 적통이라는 김여정의 방남을 받아들였다.
급기야는 천안함 폭침의 주범으로 알려진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선전부장 김영철까지도 폭침을 저지른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폐회식 참석을 허용하고 문 대통령이 접견했다. 정치와 스포츠 축제가 만난 것이다.
올림픽 마당에 한반도를 에워싼 국제정치가 깊숙이 들어왔다. 물론 근대올림픽의 탄생 역사를 보면 치열한 정치적 갈등으로 초래 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인류평화의 터전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출발의 정신이 그러하면서도 올림픽헌장은 정치를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참가하는 선수가 유니폼에 정치적 구호를 새기거나 경기와 관련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만 해도 퇴출을 시킬 만큼 엄격하게 정치를 멀리한다.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북핵문제와 전쟁불가를 해결하기 위해 내부적 상처나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오로지 대화와 타협이라는 수단을 고수하고 있다.
김영철 방남에서 보듯이 대화와 타협을 채택한 대가는 극단적인 남남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제1 야당의 국회의원들이 16시간 동안이나 국회일정을 물리고 김영철 방남을 저지하기 위해 길목을 지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다. 트럼프를 비롯한 주변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평창올림픽으로 두 마리 토끼를 한 방에 잡으려고 북한을 너무 깊숙이 끌어들인 것이 내부 갈등으로 덧이 나고 있다. 명의는 작은 상처보다는 목숨을 위협하는 치명적 내상을 잘 다스린다.
축제는 끝났다. 성화도 꺼졌다. 황홀한 평창의 축제가 끝난 뒤에 잇따르는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이 아직은 어둡고 험난해 보인다. 집도의의 메스 끝에 온 국민의 촉각이 쏠리고 있음을 잊지 말기를.
/박기태 한국정경문화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