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지방선거 동시 개헌’ 의지를 천명하면서 개헌 논의가 다시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급부상했다. 국회는 이미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정부도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장 주도하에 개헌안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는 최종보고서를 통해 개헌안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이 개헌안은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을 헌법에 규정해 도입하고자 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나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사건 등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위법행위로 인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할 필요성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되면 주의의무가 강화돼 불법행위가 억제되고, 가해자에 대한 금전적 처벌은 물론 피해자에 대한 충분한 배상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법원은 하급심 판례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은 보통법(Common Law)상 인정되는 구제방법으로 우리의 민사법 체계에서 인정되지 아니하는 형벌적 배상 형태라고 했다. 한편 2004년 말에 구성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여부를 검토했지만, 연구부족, 공론화 미비 등을 이유로 도입하지 못했다. 결국 우리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이 전면적으로 도입되지는 않았지만, 2011년 ‘하도급 거래 공정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징벌적 손해배상이 최초로 입법화된 이후 특정분야에 한해 개별 법률에 징벌적 손해배상이 제한적으로 도입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위자료가 지나치게 적고, 소비자 피해 사건에서 정신적 손해가 손해배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손해배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바, 징벌적 배상을 도입해 완전한 손해보전이 가능하도록 할 수 있다. 아울러 위법·부당한 행위를 하는 사업자 등에 대해 실손해배상 외에 징벌배상을 부과할 수 있으므로 사업자 등의 위법·부당한 행위를 제재 및 억제할 수 있다. 나아가 고의의 불법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의 입증요건이 엄격해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나, 형벌을 부과하기에 적절하지 아니한 영역에서 징벌적 배상이 효과적이면서도 적절한 제재수단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징벌적 배상제도는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았을 때보다 더욱 많은 이익(우발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는데, 우리 민법은 현실적으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할 뿐 우발이익의 보유를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징벌적 배상제도는 우리 민법의 손해배상에 관한 근본원칙 및 제도와 조화되기 어렵다. 비교법적 측면에서도 우리와 같은 대륙법계 국가에서 징벌적 배상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한 사례가 없다. 결국 우리나라는 일반법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고, 분야별로 필요성 등을 검토해 개별법을 통해 이를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일반법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서인지 위 자문회의는 개헌안을 통해 이를 헌법상 반영하고자 하고 있다. 그렇지만 개헌안을 통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헌법에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헌법상 규정하는 경우 우발이익 기대에 따라 소송이 남발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나아가 징벌적 손해배상의 위험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활동이 상당히 위축될 수 있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 가능성에 대비한 보험 등 관련 비용의 증가가 예상되며 이러한 비용이 제품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개헌안에 반영하기 보다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이 우리의 정치·경제·사회적인 여건 및 국민의 법의식에 맞는 것인지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