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개헌과 성소수자 권리
[신아세평] 개헌과 성소수자 권리
  • 신아일보
  • 승인 2017.09.1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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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동성애와 동성결혼 합법화 문제를 두고 찬반 대립이 날카롭다. 우리 내부 갈등은 개헌정국으로 갈수록 깊어질 듯하다. 그런데 이런 충돌을 보면서 수년 전 뉴델리 중심거리가 동성애자들로 가득 찼던 일이 기억난다. 동성애가 사회기강을 문란케 하는 범죄라는 이유로 10년 징역형을 규정한 인도 형법 377조 폐기를 요구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식민지 치하이던 1860년 제정된 인도 형법은 그 즈음 영국을 지배한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골수 청교도 정신을 반영했다. 당시는 산업혁명 이후 영국에서 주도권을 장악한 부르주아 계급이 청교도 윤리를 내세우면서 테이블이나 피아노 다리조차 외설적으로 생겼다 하여 덮개를 씌우도록 강요하던 시기였다. 당연히 동성애를 대하는 사회 전반의 시각은 차갑고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능지처참까지야 차마 못하더라도 최소한 정상적인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격리시켜 자기들끼리 평생 ‘그 짓’하다 죽게 하자는 게 영국 지배층과 법 만드는 이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는 식민지 인도의 형법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인도 동성애자들은 그런 배경 하에 제정된 형법 조항을 뜯어고치려 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해서인지 인도인들의 성 의식이 점차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영화 검열에 걸리기 일쑤이던 키스 장면이 용케 살아남는다. 진짜 외설스런 영화는 모른 채 하고 키스 장면 찾기에만 잔뜩 열 올리는 바람에 놀림감으로 전락해버린 검열위원회가 조금씩 마음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관광지에는 도색잡지 ‘카마수트라’가 넘쳐나고, 역사 속 왕들의 난잡한 성생활을 세밀하게 그린 춘화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 더욱이 인도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남자도 여자도 아닌 제3의 성을 가진 히즈라를 어엿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온 전통이 있다. 

아무리 힌두 영향력이 강한 사회라지만 이런저런 시대 흐름과 전통을 고려할 때 인도 형법 377조가 오늘 내일 폐기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이제껏 인도 대법원은 후세 교육에 해가 되므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며 법규 폐기 건의를 번번이 기각해왔다. 어림잡아 300~400만명 수준의 소수자인 동성애자 목소리가 힘을 얻기에는 역부족이어서였다.  

물론 여기에는 일부 종교인들의 눈치 살피기도 한몫 보탰다. 무슬림은 알라 뜻에 어긋난다고 언급한 코란과 샤리아의 가르침을 들어 동성애를 죄악시했다. 기독교인들은 남색의 어원인 소돔과 그 땅의 멸망 이야기가 기록된 창세기를 읽으면서 거의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과 유사한 관점을 지니게 되었다.

종교인뿐만 아니라 평범한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 역시 매서웠다. 가뜩이나 성 정체성을 두고 고민에 빠진 동성애자들은 자기와 다른 것을 잘못 된 것으로 단정하려는 이웃을 피해 자꾸 그늘로 숨어들어갔다.

그러다가 최근 인도 대법원이 성소수자에 관한 청문회를 열고 여러 목소리를 들으면서 변화 여지가 생겼다. 형법 377조가 성, 종교, 카스트, 출생지 차별을 금지한 헌법 15조와 자유권·인권을 다룬 14조 및 21조에 반한다는 대법원 판결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잔뜩 기대하고, 대중매체는 한층 더 성숙해진 인도 민주주의를 환영한다.

하지만 이처럼 분위기가 호전됐다고 해서 인도 동성애자들의 생활조건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법적 보호를 받으면서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인도인들의 성 의식이 과거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졌으나 ‘나는 짜이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커피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상대방의 선호를 순순히 인정할 정도에는 아직 못 미친다. 

결국 대법원 입장 변화를 기다리는 인도든 개헌을 앞둔 한국이든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관용을 키우는 것은 전체 사회의 해결과제 중 하나다.

/오창균 대구경북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