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모, 24년 노골드 '恨' 끝내 못 풀었다
박경모, 24년 노골드 '恨' 끝내 못 풀었다
  • 신아일보
  • 승인 2008.08.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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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잘 했다.

남자양궁이 그토록 기다리던 개인전 금메달은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이루지 못했다.

한국 남자양궁이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1984년 LA올림픽 이후 24년 동안 이어오던 개인전 '노골드'의 한풀이는 2012년 런던올림픽으로 미루게 됐다.

박경모(33, 인천계양구청)는 15일 베이징올림픽공원 양궁장에서 펼쳐진 남자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의 빅토르 루반(27)에게 112–113로 패해 지난 1984년 LA올림픽 첫 출전 이후 24년 만에 노렸던 사상 첫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남자양궁 개인전은 이전 올림픽에서 여자와 비교해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어떤 선수들보다 마음고생이 심했다.

지난 1984년 LA올림픽에 참가한 구자청, 최원태, 전인수를 시작으로 한국 남자양궁 개인전은 본격적으로 올림픽 무대에 도전했다.

당시 구자청, 최원태, 전인수는 전체순위에서 나란히 8, 11, 22위를 기록해 세계양궁의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LA올림픽 여자 개인전에서 서향순이 금메달을 차지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홈에서 벌어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박성수가 은메달을 차지하며 남자양궁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당시 박성수는 미국의 제이 바스에게 2점 뒤진 336점으로 2위에 올랐다.

이어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정재헌이 은메달,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오교문이 동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시드니와 아테네에서는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다.

남자대표팀이 시드니올림픽을 시작으로 단체전에서 올림픽 3연패를 이룬 것을 보면 개인전에서의 부진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다.

이날도 이해할 수 없는 남자 개인전의 '노골드' 징크스는 깨지지 않았다.

하지만 박경모의 은메달은 그 무엇보다 값진 메달이었다.


임동현(22, 한국체대), 이창환(26, 두산중공업)이 조기에 탈락했지만 대표팀의 맏형으로서 동생들의 몫까지 해냈고 홀로 토너먼트를 거쳐 당당히 결승전 사선에 발을 올렸다.

비록 남자 개인전 금메달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박경모는 검은 선글래스 뒤로 한국 남자양궁의 밝은 미래를 바라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