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봉암선생 기념사업회, 발기인 모임 가져
조봉암선생 기념사업회, 발기인 모임 가져
  • 신아일보
  • 승인 2007.10.10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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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농협중앙회 회의실서명예회복·추모사업등 추진
사단법인 죽산 조봉암선생 기념 사업회는 10일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농협중앙회 회의실에서 50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기인 모임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이 법인은 강화군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단체로 유족과 종중은 물론 외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봉암 선생 명예회복 운동 단체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명예회복과 추모사업, 생가 터 발굴 복원등의 사업을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이날 발기인들은 발기문을 통해 강화가 낳은 유명한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진보당 사건으로 간첩의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분으로 1982년 말, 창녕 조씨 문중에서 그의 사후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죽산의 사면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한 적이 있고, 1991년 김영삼, 김대중을 비롯한 여야 국회의원 86명이 ‘죽산 선생의 사면복권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였으나 제대로 처리되지 않았고, 강화에서는 1999년 죽산선생 탄생 100주년, 사형 40주년을 맞이하여 의식 있는 분들을 중심으로 강연회를 갖고 죽산 추모사업회를 설립, 2001년 갑곳 진에 추모비 제막을 하는 등 활동을 하였으나 끝내 명예회복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활동이 중단됐었다.
자유당 정권은 1958년 북한의 공작금을 받았다며 죽산에게 간첩혐의를 씌우고 진보당이 내건 평화통일론이 북한의 주장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여 구속시켰다. 1심 판결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았으나 2심과 3심에서 사형을 선고 받고 환갑을 두 달 앞둔 1959년 7월 31일, 생을 마감했다.
남북화해와 평화공존의 시대를 맞아, 많은 사람들이 선생은 절대 간첩이 아니었으며 자유당 이승만 전권의 장기 집권체제에 큰 위협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제거를 당한 것이라고 평가 하고 있다.
또 그의 평화통일 노선은 민족독립운동가로서의 그의 이념과 투쟁 경력의 산물이면서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해 평화적이면서 민주적으로 통일을 성취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을 담은 선각자적 노선으로 냉전적 대결구도의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1899년 9월 25일 강화군 선원면에서 출생하여 강화공립보통학교와 농업보습학교를 졸업했으며 일제시대 에는 독립운동으로 9년 동안 옥고를 치르고, 해방 직후에는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단독정부수립 이후에는 국회의원, 초대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으며 두 차례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하였으며 이승만 정권과 보수야당에 대항하는 혁신정당인 진보당을 만들어 활동했다.
이에 우리는 억울한 죽음을 당한 죽산 선생의 명예회복과 추모 사업은 더 늦기 전에 우리 강화인들이 앞장서 추진하여야 할 시대적 사명으로 생각하고, 정치적 음모에 의해 간첩이라는 죄명으로 사형당한 선생의 부당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재심을 통하여 명예를 회복시키고, 선생의 뜻을 펴고 기리는 일에 공감하는 분들이 함께 모여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 사업회’ 을 발기한다고 밝히고 ‘티끌모아 태산’ 이라고, 뜻하는 사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강화군민 모두의 역량을 결집하여 힘차게 앞으로 나가지고 다짐했다.
한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죽산 조봉암 선생이 1950년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당한 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의 사과와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권고를 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을 하다 복역한 사실을 근거로 조봉암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라고 밝혔다.
백경현기자
khback@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