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행정 이례적 성공사례 ‘화제’
교도행정 이례적 성공사례 ‘화제’
  • 신아일보
  • 승인 2007.10.09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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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교도소, 재소자를 아이디어맨으로 교화

모범수 장경노씨 실용신안 등 총 8건 출원

황막한 수형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 삶을 다지고 있는 한 모범수의 인생드라마가 높은 교도소의 담을 넘어 시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 전주교도소 장경노씨(58.사진)는 김종규 소장과 교도관들의 도움으로 지난 3년간 총 8건의 공업소유권을 출원, 속속특허를 취득함으로써, 동료 수감자들에게 수감생활 중에서도 스스로 노력하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전주교도소의 성공적인 교화사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편집자 주)

-불행한 “엄마 찾아 3만 리”
장경노씨의 수감인생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비롯됐다.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계모의 슬하를 벗어나 “엄마 찾아 3만 리”의 대 모험을 시작한 실제인물이다. 군산에서 생모를 찾아 무작정 상경한 소년은 풍찬노숙(風粲露宿)으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반드시 엄마를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서울을 헤맸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어린나이에 이용기술을 배워 이발소에 직장을 얻는 등 칭찬받는 소년으로 성장했다.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의 터전이 마련되는 듯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그에게 가혹한 시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발소에 자주 찾아왔던 한 형의 꾐에 빠져 그는 나락의 길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어느 날 그 형은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 이를 어떤 사람에게 전하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순진했던 시골뜨기 장 소년은 이를 가져다주다가 장물아비로 검거되어 소년원 신세를 지게 됐다. 소년원을 출소한 장 소년을 맞아 준 사람은 바로 그 형들의 패거리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장씨는 이후 오토바이 전문 절도단의 일원으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는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체포되어 교도소에 오면 한없는 후회로 눈물을 흘리면서 다시는 절도를 하지 않겠다고 수도없이 다짐했지만, 출소하면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으며 갈 곳도 없어서 다시 범행을 반복하는 삶이 계속됐던 것이다.
1986년 36세의 나이로 출소한 장경노씨는 이번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향인 군산으로 몸을 숨겼다. 어둠과 질곡의 사슬을 이를 악물어 끊고, 농사일에 전념하면서 차차 안정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복합영농을 하면서 돈도 모으고 사회적으로 기틀을 잡아 아들을 대학에 보내는 등 행복한 가정을 일구어냈다.
-각고의 20년 하루아침에 무너져
그런데 한번 교도소에 발을 들여놓았던 사람은 그 악연을 쉽사리 끊어낼 수 없는 것인지 어두움은 또다시 20여년을 넘어 우정을 틈새를 비집고 찾아들었다. 교도소에서 알게 된 친구가 사업에 실패해서 오갈 데가 없게 되어 장씨를 찾아왔다. 겨울은 닥쳐오는데 처자식과 함께 승합차에서 기거하면서 사정이 너무 딱해서 장씨는 겨울동안만 자기 집에서 함께 살도록 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어느 날 볏 집을 한차 가득 싣고 와서는 형님이 보태주어서 갖고 왔다고 자랑하면서 현금으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장씨는 별 의심 없이 이를 정미소에 가지고 가서 현찰을 받고 팔아주었고 수고비로 그 일부를 받게 됐다. 얼마 후 친구는 또 트럭에다 벼를 가득 싣고 왔다. 더럭 의심을 품게 된 장씨가 꼬치꼬치 캐어묻자 친구는 태도를 돌변하면서 먼저 것도 도둑질한 것이라면서 공범이라면서 오히려 우리 자수하자고 날뛰었다. 군대가 간 자식이 알까? 동네사람들에게 들통이 날까? 너무도 두려워 딱 이번 한 번만이라는 조건으로 이를 알고도 도와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벼 도둑이 됐다. 그리고 결국 꼬리가 잡혀 2004년 11월 징역 3년의 신고를 받게 됐다.
처자식들은 땅을 치면서 통곡하고 하늘이 깜깜해졌다. 20여 년간 가꾸어 온 유복한 가정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었다. 세상에서 이런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이 자기 자신이였다는 사실에 혼백마저 흩어지는 듯했다.
-전주교도소의 교화로 발명가로 거듭나
그러나 장씨는 자신의 출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사랑하는 처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가슴이 시리도록 절감하면서 다시 일어섰다. 특히 자신도 모른 채 그의 머릿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창의력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신 교도관님들과 특허출원의 편의까지 제공해주신 김종규 소장님의 특별배려는 장씨에게 새로운 용기를 심어 주었다.
장경노씨는 이후 총 8건의 특허를 출원해서 큰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이중 “해수를 이용한 선박 추진 장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변리사 사무실에서 국제특허까지 추진 중이며, 2006년 실용신안 제 0014679호로 등록된 “거울관”은 건물 지하실이나 어두운 실내에 햇빛을 운반하는 PVC파이프로 마치 내시경처럼 굴곡진 통로를 따라서도 햇빛을 이동시키는 아이디어 상품으로 벌써부터 건설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장씨는 수감 중인 지난 3년간 4건의 디자인도 출원하는 등 미술적인 감각도 뛰어나다. 또 나머지 2건의 실용신안 출원도 모두 산업적으로 이용이 가능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오토바이 전문 절도범이나 벼 도둑과는 어울리지 않는 재능과 용모를 타고나서 교도관 등 주위사람들에게 “운명의 장난”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지만, 이제 몇 달 후의 출소를 앞두고 우리 사회에서 자신은 물론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굳게 살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영노기자 no728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