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세평] 신 샌드위치형국의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
[신아세평] 신 샌드위치형국의 한국, 어디로 가야 하나
  • 신아일보
  • 승인 2017.08.31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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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태 한국공유경제연구원장
 

하늘이 더 높아지고 산내들은 차분하게 낮아진다. 하늘 땅 통로가 트이니 지나가는 바람결이 한결 서늘하다. 가을이 힘겹게 문턱을 넘어서는 모양이다.

꼭 10년이 지났는데도 잊혀 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2007년 1월2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그 해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서 이건희 삼성그릅 회장이 “중국은 뒤에서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중간에 끼어있는 샌드위치 신세다”라고 하면서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을 설파하였다.

당시 이 위기론을 강조한 취지는 한동안 호황을 누리며 성장을 이끌던 IT산업의 기술적 성장한계를 의식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경제인의 충정에서 나온 고언이었다. 그것은 세계적 초 일류기업으로 발돋움 하려는 의지를 가진 기업인이 체감한 한국경제에 대한 경고이기도 한 것이었다.

이 샌드위치 위기론이 재계의 공감을 얻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자 과도한 경제위축을 우려한 청와대는 발끈하고 경제당국은 당황하며 허둥거렸다. 급기야 당시 김영주 산자부장관이 직접 진화에 나서 제동을 걸고 오히려 역위기론으로 반격을 가하는 형국이 펼쳐졌던 것이다.

10년을 돌이켜 보니 그때는 경제영역의 부분적 샌드위치 위기라면 지금은 경제는 물론이고 북한 핵미사일과 외교안보, 국제통상 전반에 걸친 복합적 샌드위치 위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가장 큰 샌드위치 형국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누적된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듯 마치 숙명인 듯 주변강국의 거센 압박에 끼여 제 몸짓 제대로 못하고 몸부림을 치는 대한민국 안전보장이다. 분단된 상황에서 체제대립을 하고 있는 우리는 북한 핵과 미사일이 기폭제가 되어 감내하기 힘든 안보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비우호적이고 북 친화적인 주변 강국은 말할 것도 없고, 혈맹이라는 미국이나 우호적이어야 하는 일본마저 역사적 상처에서 덧이나 아물지 않은 외교적인 딱지 때문에 은근 노골적 압력을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아 무작정 믿을 수도 없다.

샌드위치 외교안보위기의 원인제공자이며 기폭제인 북의 김정은은 이제 노골적으로 샌드위치 속은 빼서 팽개쳐 버리고 겉 빵끼리 직접 대화 하자고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에 대하여 다른 한 축인 미국은 겉은 강경, 속은 대화라는 은근전략을 구사하며 여차하면 코리아패싱도 불사할 징후를 보이고 있다. 운전대론을 주장하면서 평화적 대화국면을 갈망하는 문재인 정부는 절대 그럴 일이 없다고 펄쩍 뛰지만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은 듯 보인다.

일본은 둘 사이에 끼여 점점 운신이 여의치 않은 우리형편을 즐기며 유리한 국면을 끌어내려는 의도를 슬쩍슬쩍 엿보인다.

북 핵과 미사일에 연계된 중국의 사드압력이나 러시아의 간접지원 외교행태가 직접적 압박이라면 미일의 태도는 간접적이고 잠재적인 압박이다. 외교안보국면이 처한 신 한국샌드위치 위기다.

뻔히 보이는 것을 외면하고 부정하면 무책임한 회피이고 대책도 없이 큰소리만 치면 뻥일 뿐 해법에서는 멀어질 것이다. 엎치면 쉬이 덮치는 법이다.

미국은 잘 나가던 한미 FTA에 딴지를 걸면서 전면적 재협상 테이블에 다시 올려놓고 한국을 요리하려 하고 있다. 우리정부는 주눅들 것 없다고 결기를 부리고 있지만 이것 역시 녹녹하지 않게 보인다.

내적으로는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하는 삼성의 실질적인 총수가 뇌물공여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국제적인 신인도가 날개도없이 추락하는 형편이다. 정경유착, 뇌물공여는 기업의 암이라고 남긴 선대회장의 유훈을 잊은 탓이다. 당장이야 별 탈 없어 보이지만 한국경제 전반으로 번지면 미래의 성장 동력이자 새로운 먹거리 밭이라는 제4차 산업혁명을 수행하는 데 빨간불일 수밖에 없다.

탄력이 붙어 추격하는 중국은 고삐를 더 바짝 죌 것이고 오랜 불경기의 잠에서 깨어 두리번거리는 일본이 나아가는 보폭은 더 커질 것이다. 신 경제 샌드위치위기의 조짐이 역력하다.

이제 새 출발 해서 100일을 갓 넘긴 문재인 정부의 열정과 소통 의지를 믿는다. 한반도 안보와 외교, 평화정착에 대한 새 정부의 방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이며 진보가 지향하는 소중한 가치이다. 맞고 반대할 수 없는 새 정권의 자산이다.

하지만 가치의 독점과 조급한 성과달성에 급급한 지나친 소신운전은 자칫 과속 난폭운전이 되기 쉽다. 통로가 튀여야 바람이 지나가고 길이 튀어야 차가 나간다. 뜻을 모으는 소통이 먼저고, 주변 장애물을 치우는 것이 먼저고 운전대 잡는 것은 나중이다.

/박기태 한국공유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