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계란 이어 생리대까지… 구멍난 친환경 인증
[기자수첩] 계란 이어 생리대까지… 구멍난 친환경 인증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7.08.23 16: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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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면 생리대라고 해서 종종 착용했고 ‘오가닉’이나 ‘친환경’이라는 단어를 보고 더 신뢰성을 가졌었다. 하지만 아무리 순면 100%이라도 면이 아니라 조금의 화학물질은 들어갔을 텐데 친환경이나 유기농 인증이란 말을 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여성 생리대 ‘릴리안’ 제품을 사용하던 한 여성의 발언이다.

‘릴리안’은 유해성이 없는 100% 순면 커버 친환경 소재 기능을 자랑하며 가격까지 저렴해서 많은 여성들이 이 제품을 믿고 사용해왔다. 때문에 이번 부작용 논란은 더욱 일파만파로 퍼졌다.

“이 제품을 사용한 뒤 생리 주기가 바뀌고 생리통이 심해졌다” “생리양이 줄었다” “릴리안을 쭉 썼었는데 두 번 연이어 유산했다. 혹시 이것 때문인가” 등의 부작용 경험담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번졌다.

특히 최근 ‘살충제 계란 파문’으로 가뜩이나 국민들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여성 생리대에 독성물질이 검출됐다는 논란은 정부 친환경 인증에 대한 불신에 더욱 불을 지피는 것은 물론, 각종 ‘포비아’ 사태로까지 확산하는 모양새다.

앞서 정부의 살충제 계란 전수조사 결과, 살충제 성분 검출 판정을 받은 농가들은 오히려 친환경 인증 농가에서 더 많이 나왔다.

친환경·유기농을 홍보 문구로 걸어놓은 릴리안도 이와 같은 양상이다. 지난 3월 한 환경단체의 ‘생리대 안전성 조사’ 결과, 릴리안에서 가장 많은 독성물질이 검출됐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확한 확인 없이 친환경 인증이 남발된 원인은 무엇일까.

릴리안 제품에는 총휘발성 유기화합물(TVOC)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지금까지 TVOC에 대한 인체 위해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없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현행 생리대 규제 항목에서도 TVOC는 빠져 있고, 이런 ‘구멍’은 릴리안이 친환경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전혀 거리낌 없게 만들었다.

친환경성을 평가하는 민간인증기관의 수익구조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들은 친환경 인증을 많이 할수록 수익이 난다. 말 그대로 친환경 인증을 남발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일단 정부는 문제가 된 릴리안 제품을 수거해서 유해성 검사에 착수하겠다고 했다. 다만, 아직까지 생리대로 인한 유해 사례가 보고되거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만큼 좀 더 꼼꼼하게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논란이 되고 있는 계란과 생리대는 직접적으로 섭취하고, 살에 접촉하는 제품이기에 더욱 정부의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결국 언제까지 해결하겠다는 식의 입에 발린 말은 이제는 국민들에게 그저 일시적인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

정부는 상황에 대해 더 자세하고 숨김없이 설명한 후 믿음직한 해법을 해놓아야 할 것이다.

제품에 대해 정부의 주도면밀한 집행과 처방, 체계적인 사후관리, 그리고 진실된 발표가 있기를 바래본다.

[신아일보] 박고은 기자 goeun_p@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