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국정원 민간 댓글부대… MB정권 수사 불가피
베일 벗은 국정원 민간 댓글부대… MB정권 수사 불가피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7.08.03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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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012년 '사이버 외곽팀'서 민간인 3500명 활동
"국정 지지 여론 확대 및 反정부 여론 제압이 목적"
2011년 靑에 與 선거승리·野 동향보고…대선 개입도
▲ 국가정보원 청사 전경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이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민간인까지 투입해 조직적으로 댓글을 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지난 18대 대선 당시 '대선 댓글 사건'에도 국정원이 개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직접 보수단체 지원과 언론통제 등을 지시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이명박(MB) 정부 당시 국정원과 청와대에 대한 검찰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 적폐청산 TF는 3일 지난 2011년 국정원이 특정 정당의 선거 승리 방안을 제안하고, 야권 인사의 동향을 파악하는 내용을 담아 작성한 문건 작성 여부가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해당 문건은 지난 2015년 세계일보를 통해 국정원이 작성했다는 의혹이 있다고 보도된 문건으로, 적폐청산 TF는 2011년 당시 이 문건의 작성자와 결재선, 배포자 등을 조사해 이러한 사항을 모두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적폐청산TF는 이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조사 결과를 개혁위에 보고했다.

적폐청산 TF에 따르면 원세훈 국정원장 재임 때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 국정원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고, 네이버와 다음 등 4대 포털과 트위터에 친정부 성향의 글을 게재했다.

또 사이버 상의 정부 비판 글들을 종북세력의 국정방해 책동으로 규정해 반정부 여론을 제압하려 했다고 적폐청산 TF는 설명했다.

2009년 팀이 구성된 이래로 인원은 점차 늘어 2012년에는 30개팀 3500명까지 확대 운영됐고, 한 달 인건비는 약 2억5000만원에 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외곽팀 구성원은 대부분 별도 직업을 가진 예비역 군인·회사원·주부·학생·자영업자 등 보수·친여 성향 인물이었으며 개인시간에 활동했다고 적폐청산 TF는 밝혔다.

▲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적폐청산TF는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이용해 이명박 정부의 통치 보조용 여론조사를 다수 실시한 사실도 확인했다.

국정원은 2011년 2월 여론조사 업체를 동원해 ‘2040세대의 현 정부 불만 요인’ 등에 대해 자체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 인원은 20~50대 총 1200명이었다.

국정원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정권의 대응 방향 등을 조언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했다. 국정원의 조직과 예산을 정권 통치 도구로 활용한 셈이다.

적페청산 TF는 이와함께 세계일보 보도 문건 조사 결과 국정원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당 후보들의 선거운동 방법 등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원 전 원장의 '전부서장 회의시 지시강조 말씀' 녹취록 확인 결과, 2012년 대선기간 벌어진 댓글사건에 대한 2013년 4월 검찰의 수사에서 36곳이 삭제된 채 검찰에 제출된 사실도 확인했다.

적폐청산 TF는 36곳 중 18곳을 복구했으며, 복구한 내용은 보수단체 결성·지원·관리, 지자체장·국회의원 검증, 언론보도통제, 전교조 압박·소속 교사 처벌, FTA 관련 언론홍보, 특정 정치인·정치세력 견제 등의 지시사항이었다고 밝혔다.

적폐청산 TF는 삭제된 나머지 녹취록도 복구하는 한편, 삭제 경위도 추후 확인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적폐청산 TF가 확인한 문건 중에는 야당 후보자와 지지자만을 대상으로 검·경 지휘부에 신속하고 엄정한 수사와 처벌을 독려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민주당 담당 정보관 첩보를 활용해 손학규 전 대표와 우상호 의원 등 당시 야당 인사들의 동향을 보고하는 문건도 국정원은 만들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폐청산TF는 현재 각종 자료를 분석 중이며 향후 외곽팀 운영 외에도 온라인 여론조사 사건의 전모를 규명한다는 계획이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이번에 공개된 '원세훈 국정원'의 댓글부대 운영은 향후 관련 내용을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는 형태로 검찰이 본격 수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무엇보다 원 전 원장이 지휘하던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이명박 정권의 청와대와 당시 여당의 선거 승리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이 나온 만큼 현 정부의 적폐청산 기조가 이명박 정부로 확대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그간의 적폐청산 작업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 초점을 맞춰 부각된 면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발표를 계기로 MB 정부를 겨냥한 사정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란 분석이다.

MB 정부 당시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에 대한 조사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제기된다.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SNS 장악 문건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보고된 사실이 이미 드러난 바 있다.

보고가 어디까지 이뤄졌는지 반대로 청와대가 국정원에 지시를 내린건 없는지 모두 검찰이 확인해야할 부분이다.

다만,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법 위반의 공소시효와 내부 징계 시한은 올해 12월까지로 불과 5개월 남았다.

현행 국정원법상 정치개입 금지 혐의의 공소시효는 10년이지만 2014년 이전에 벌어진 사건은 공소시효가 5년이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