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랑은 폭력의 면죄부가 아니다
[기자수첩] 사랑은 폭력의 면죄부가 아니다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7.08.03 16: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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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술에 취한 남성이 곁에 있던 여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다. 얼굴을 맞은 여성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쓰러진다. 남성은 개의치 않고 쓰러진 여성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두른다. 이를 본 주변사람들이 나서 남성을 말리자 자신의 트럭까지 몰고 와 협박한다.

지난 달 19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CCTV영상이 공개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특히나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영상에 등장하는 남성과 여성이 연인사이라는 점이다.

이 영상을 촉매제로 연인관계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정서적, 물리적, 경제적 폭력행위인 ‘데이트폭력’(dating violence)이 다시금 사회적 도마 위에 올랐다.

당초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은 남녀 간 다툼이나 사랑싸움 정도로 여기는 시각이 흔했다. 이에 수사기관도 데이트폭력을 사랑싸움으로 치부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적극 대응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영상 이후 그 참상이 드러난 사례들이 속속 공론화 되면서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고, 데이트폭력에 대처할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경찰과 정부도 심각성을 재고해 실효성 높은 대책 마련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데이트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경찰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폭력 재범률이 76%에 달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한 번 폭행을 저지른 가해자는 또 다시 연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많은 데이트폭력 피해자들은 연인의 반복적인 폭력에도 관계를 끝내지 못해 그들을 용서한다.

기자의 지인 중에서도 데이트폭력 피해자가 있다.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폭력을 당하고 나선 기자를 찾아와 몇 시간에 걸친 한풀이를 하고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손이 발이 되게 싹싹 빌고 나자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다시 만남을 이어갔다. 이런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되고 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가해자는 자신의 잘못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진다. 피해자의 초기 판단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은 슬프겠지만, 애정이 폭력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더 이상 많은 피해자들이 사랑이란 가면을 쓴 연인의 폭력에 상처입지 않았으면 한다.

과거 JTBC에서 방영됐던 마녀사냥에서 작가 곽정은 씨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났다는 분명한 증거는 함께 있을 때 변해가는 내 모습이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 말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다.

이 말을 빌어 연인의 반복되는 폭력에도 관계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연인에게 맞아 몸과 마음이 모두 멍으로 얼룩진 자신의 모습이 진정 마음에 드는가?

[신아일보] 박선하 기자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