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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날치기’도 적폐다
[데스크 칼럼] ‘날치기’도 적폐다
  • 신아일보
  • 승인 2017.07.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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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산업부 팀장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음습하기 이를 데 없는 ‘날치기’가 되돌아왔다. 그것도 향후 국가 에너지정책을 좌우할 정도의 커다란 파급력을 지닌 의사결정 과정이 ‘날치기’로 이뤄졌다.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는 한수원 노조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5·6호기 원전 공사 일시 중단 안건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한수원 이사회가 정부 정책 추진을 위한 거수기 노릇을 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수원이 이사회를 기습적으로 열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부터 출발한다.

정부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한수원 입장에서는 노조와 지역민, 공사 업체들의 반발에도 일정부분 응답해야만 했다. 때문에 노조의 반대로 이사회가 무산되는 일종의 ‘쇼’를 먼저 보여주고, 바로 다음날 아침 기습적으로 이사회를 개최한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새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를 요약하자면 ‘탈원전 친환경’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공정률 30%인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일시중단하고,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3개월간 시민 배심원단의 논의를 거쳐 계속 건설 여부를 최종 판단하도록 결정했다. 이어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수원에 공사 일시 중지 요청 공문을 보냈다. 말이 요청이지 한수원 입장에서는 반드시 따라야할 지시와 다름없다.

특히 우리나라 원전 정책은 정부 정책으로 결정돼 왔기 때문에 공기업인 한수원은 탈원전 정책에도 따를 수밖에 없다. 산업부도 ‘에너지공급자(한수원)는 국가 에너지 시책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에너지법 4조를 근거로 “한수원이 일시 중단 요청을 따를 의무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산업부는 이번 이사회에 대해 뒷짐만 지고 있다. 기습적인 이사회 개최에 이은 날치기가 한수원의 판단에 의한 것이며 자신들의 공사 일시 중단 요청과는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누가 봐도 뻔한 사실이지만 애써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이번 ‘날치기’를 탄생시킨 주역은 한수원이 아니라 정부다. 일방적 지시만 가득했던 지난 정권의 ‘불통’ 대신 소통과 집단지성을 강조해온 새 정부에서의 ‘날치기’는 그래서 더더욱 충격적이다.

원전을 둘러싼 논쟁은 적폐청산과는 다르다. 새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진할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다양한 실행 시나리오와 정보를 제공해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인지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공론화다.

원전을 줄임으로써 만약의 사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점은 큰 강점이지만 경제적 손실도 만만치 않다.

이번 신고리 5·6호기 건설만 하더라도 총사업비가 8조6000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설계·건설 등 이미 계약이 완료된 금액이 4조9000억 원이고 지난 5월 말 기준 1조6000억 원이 투입됐다. 정부는 보상비 1조 원을 합해 총 2조6000억 원을 매몰비용으로 추산했다.

산업경쟁력 제고 차원도 고려돼야 한다. 하지만 이번 ‘날치기’ 한방으로 다양한 견해가 쏟아질 논의의 장은 사실상 사라져 버렸다. 대신 정책목표 달성을 위한 일방적 설득이나 프로파간다가 활동할 틈이 생겼다.

‘날치기’.

과거 정치권에서 자주 등장했지만 그나마도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진 이후엔 만나기 힘들어졌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조건인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요구가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날치기는 독재시대의 일방적 지시와 맹목적 추종이 탄생시킨 적폐 중 하나일 뿐이다. 다양성과 소통을 통한 협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현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적폐청산을 외치는 새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단 한 번도 용납될 수 없는 구악(舊惡)이다.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해서는 다소 혼란스럽더라도 차근차근 과정을 밟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신승훈 산업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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