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유신 투쟁 밑거름 된 지하신문 '녹두' 최초 공개
反유신 투쟁 밑거름 된 지하신문 '녹두' 최초 공개
  • 박고은 기자
  • 승인 2017.07.17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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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전남대서 벌였던 정권 비판 시위·진압 과정 소개

▲ 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산하 한국민주주의연구소가 공개한 1971년 전남대에 살포된 지하신문 '녹두' 창간호의 앞면.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광주 대학가에 비밀리에 살포돼 학생들의 반(反) 유신 투쟁의 밑거름이 된 지하신문이 최초로 공개됐다.

17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산하 한국민주주의연구소는 학술지 ‘기억과 전망’ 여름호에서 1971년 전남대학교에 뿌려진 지하신문 ‘녹두’를 최초 공개했다.

1971년 10월 13일 발간된 ‘녹두’는 발간 이틀 전인 10월 11일 전남대생 1000명이 학내에서 벌였던 정권 비판 시위와 그 진압 과정을 주요 기사로 소개했다.

실제 이 시위는 당시 중앙 일간지는 물론 지역신문에서도 기사로 다뤄지지 않았다.

이번에 ‘녹두’를 공개한 박석무(75·전남대 법학과 63학번)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녹두는 요즘으로 보면 A4 용지 두 장 크기로, 앞뒤 양면이었다”면서 “언론이 위축됐던 때 들불처럼 번지던 학생 데모를 알리기 위해 만든 찌라시 같은 신문이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 한 차례 간행으로 끝났지만, 학생들은 큰 영향을 받아서 발간 이튿날인 14일부터 나흘간 대대적인 데모가 계속됐다”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의 거점이 된 ‘녹두서점’과 전남대 투쟁단체 ‘녹두’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전남대 녹두편집동인회는 당시 창간호에서 ‘동학의 투혼으로 민족·민주의 횃불을!’이라는 제목의 창간사로 학생들에게 동학혁명의 정신을 일깨우고자 했다.

‘봉건적 집단의 혹독한 착취 사슬에서 부지깽이와 쇠스랑으로 일어섰던 위대한 영웅 녹두장군의 혁명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면서 전봉준 장군과 같은 정신으로 군사 독재정권에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이사장은 창간사에 대해 “정제되지 않은 구호 위주라 성명서나 선언문 같은 글이지만, 독재권력의 언론탄압으로 진실이 보도되지 못하던 시절에 새로운 언론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각오가 드러나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신아일보] 박고은 기자 gooeun_p@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