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학 가기 싫었다는 정유라, 실력으로 보냈다는 최순실
[기자수첩] 대학 가기 싫었다는 정유라, 실력으로 보냈다는 최순실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7.06.01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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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스펙이 자식의 스펙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학력·학벌 세습’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준 최순실, 정유라 모녀.

5월의 마지막 날, 이들 모녀의 거침없는 발언들은 또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비선 실세’ 최씨의 딸 정씨는 덴마크에서 체포된 뒤 한국 귀국을 거부하며 151일간 버티다 이날 귀국했다.

인천공항에 특별 마련된 포토라인에 선 그녀는 이대 입학 취소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학교를 안 갔기 때문에 입학 취소 당연히 인정한다. 사실 난 전공이 뭔지도 모른다. 대학에 가고 싶었던 적도 없다”고 당당히 대답했다.

엄마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해서 정말 귀찮다는 듯한 표정의 정씨는 이따금씩 미소까지 띄어가며 자신은 정말 아무 잘못이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 정씨를 보며 다소 황당하다 못해 황망한 마음까지 든 것은 비단 기자뿐이었을까.

그러면서도 정씨는 엄마가 시켜서 금메달을 들고 대학 면접을 봤으며, 중앙대에도 들고 갔던 것 같다고 했다.

같은 날, 어머니 최씨는 법정에서 울부짖었다. 내 딸은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며, 오로지 권력과 재력으로 이대에 들어갔다는 건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최씨는 “유라가 5살부터 승마를 했고 오로지 올림픽 금메달을 따기 위해 많은 실력을 쌓으려 노력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승마에 바쳤다”며 이대 입시·학사 비리 혐의에 대해 강력 부인했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모녀다. 당시 이대 규정에 따르면 응시생이 면접장에 금메달을 갖고 들어오는 것이 규정 위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딸은 당당히 금메달을 갖고 대학들을 누볐다고 얘기하고 있고, 엄마는 딸이 특혜를 받은 바가 없다고 강변하고 있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이런 점을 미뤄보면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았다는 정씨의 발언은 그저 공범 관계를 부인하기 위한 계산된 발언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날 정씨와 최씨 모녀가 자신들의 죄를 덮기 위해 내뱉은 발언들로 또 한 번 상처입고 분노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은 따로 있다.

바로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국정농단의 피해자들이 된 이대생들이다.

극심한 취업난 시대에 내몰린 상황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학점을 받으려 분투하고 있었을 때 총장, 학장, 교수들이 한통속이 돼 '비선 실세'의 딸 1명을 위한 특혜를 공모·실행했다는 정황은 이대생들에게 얼마나 큰 충격이었을까.

그런 이대생들이 보는 앞에서 정씨와 최씨는 자신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제대로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정씨의 이대 입시·학사 비리는 분명 일개 대학 비리라는 의미를 넘어 대한민국에서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른바 ‘흙수저’ 학생 전체, 나아가 국민 전체를 분노케 한 대형 사건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사법부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로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법원은 엄중한 법의 심판이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이대생들을 비롯한 온 국민의 가슴에 새긴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길이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