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부문화 막는 조세정책 손질해야
[데스크 칼럼] 기부문화 막는 조세정책 손질해야
  • 신아일보
  • 승인 2017.04.2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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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산업부장
 

최근 증여세 소송으로 세간에 오르내린 황필상 전(前) 수원교차로 대표는 우리 조세정책의 민낯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황씨는 자신이 설립한 장학재단에 수원교차로 주식 90%(주식평가액 180억원)를 기부했다가 140억 원의 ‘세금 폭탄’을 맞는 황당한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소송이 7년간 이어지면서 가산세까지 붙어 세금이 220억 원으로 불어나자 그는 살고 있던 아파트까지 압류 당했다.

장학금이 필요한 학생들을 돕기 위해 전 재산을 기부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이 정부의 ‘과세 뭉둥이’라니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황 대표는 특정회사 지분의 5%를 초과하는 주식을 공익재단에 기부할 때 증여세를 최대 60%까지 부과하는 이른바 ‘5% 룰’의 희생양이다.

5% 룰은 대기업이 공익재단을 활용해 편법 상속 및 증여를 악용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지난 1993년 도입됐다.

수 조원 대에 달하는 대기업 총수 재산에 비해 황 대표 재산은 200억 원도 채 안되는데 과도한 세금을 부과 받은 조세정책의 제물이 된 셈이다.

학창 시절 읽었던 그리스 로마신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가 문득 떠올랐다. 강도인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으로 데려와 쇠 침대에 눕히고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리고 길면 잘라 버렸다.

악행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아테네 영웅 테세우스에게 같은 방법으로 죽음을 당했다. 여기서 유래된 ‘프로쿠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이 세운 기준에 다른 사람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을 일컫는다.

황 대표가 촉발한 조세논란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다. 조세 저항을 피하면서 복지에 필요한 세원을 확보하려는 ‘양수집병(兩手執餠)’의 꼼수다. ‘증세없는 복지’ 정책이 허구였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박근혜 전(前)정부가 차라리 처음부터 증세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고백하고 국민을 설득했다면 선의 기부자에 대한 세금폭탄이라는 부당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증세없는 복지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모든 국민이 적은 액수라도 세금을 내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로 돌아가야 한다.

가뜩이나 경기침체로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껏 납세 성역(聖域)으로 남은 종교인과세도 이제는 과감하게 실시해야 한다. 종교인이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엄중한 원칙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대법원이 세금폭탄이 부당하다며 황 씨 손을 들어둔 것은 그나마 위안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일을 계기로 척박한 우리 기부 문화가 다시 움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

우리의 기부금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0.8%로 미국(2%)의 절반도 안 되는 것은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5% 룰’을 대기업의 변칙 상속 수단으로 여기는 정치권 입장이 바뀌지 않는 이상 황 대표와 같은 선의 기부자를 좌절시키는 과세 사례는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기부를 통해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려는 의인(義人)들을 골탕 먹이는 나라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김민구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