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80년대 중반부터 한국과 관계 개선 타진"
"중국, 80년대 중반부터 한국과 관계 개선 타진"
  • 이선진 기자
  • 승인 2017.04.11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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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모란구상' 내용 담은 23만쪽 외교문서 공개
아웅산·KAL기 피격 사건…남북대화·올림픽 성공 등

▲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북한과 소련 관계 긴밀화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활용해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모란' 구상을 추진한 것으로 외교부가 11일 공개한 30년 경과 외교문서에서 드러났다.(사진=연합뉴스)

한·중관계와 북·미관계를 한·미 주도로 추진했던 사실 등 1980년대 국내외 정세를 기록한 ‘비밀외교문서’가 30년 만에 공개됐다.

이 문서에는 한국과 중국이 지난 1992년 정식 수교를 맺기 전인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이 관계 개선을 은밀하게 타진했던 사실도 나타나 있다.

외교부는 11일 1986년도분을 중심으로 이른바 ‘모란’ 구상의 내용을 담은 외교문서 총 1474권(23만여 쪽)을 공개했다.

해당 문서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각종 신무기를 도입하는 등 북·소 관계가 부쩍 긴밀해지는 데 불안감을 느낀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키우려 하자 한·미는 그 기회에 한중관계와 북미관계를 동시에 개선하고자 '모란' 구상이라는 이름 아래 1986년 초부터 협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문서 가운데 '중공-북한 관계 간담회' 결과 보고서에서는 타오빙웨이 당시 중공 외교부 국제문제연구소 주임의 당시 간담회 발언을 소개했는데, 타오 주임은 중공이 남북 대화가 진전되기를 희망하며 그렇게 되면 중공과 남한과의 관계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당시 북한이 소련에 접근한 이유는 남한과 중공의 관계 개선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중 수교가 1992년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중국 관리가 6년 전부터 양국간 관계개선 의지를 언급한 것은 파격적인 행보로 풀이된다.

이 외교 문건에서는 북한 소행의 아웅산 사건(1983년 10월 9일) 이후 테러범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판사의 딸 피살사건에 북한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당시 우리 정부가 포착한 사실도 확인됐다.

전두환 정권은 아웅산 사건과 소련이 자행한 KAL기 피격 사건(이상 1983년 발생)과 관련한 추도 행사 등을 남북대화, 올림픽 성공 등의 명목 아래 축소 추진한 정황도 공개됐다.

‘단임(單任) 대통령’을 약속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6년 방한한 조지 슐츠 당시 미국 국무장관을 만나 단임 약속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던 사실도 파악됐다.

더불어 쿠데타와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 등 ‘원죄’를 안고 있던 전두환 정권은 ‘인권 침해국’이라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유럽을 무대로 총력 외교전을 벌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1986년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 발언을 한 신민당 유성환 의원의 구속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나섰고, 당시 아칸소 주지사였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석방 탄원 서한을 우리 정부로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이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27년간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3500억 원에 달하는 교육자금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에 보낸 사실도 밝혀졌다.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고(故) 무아마르 카다피(1942∼2011) 집권 당시 미국이 대 리비아 제재에 나서자 전두환 정권이 현지 진출한 건설업체가 받을 타격을 막기 위해 미국과 리비아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인 상황도 자세히 소개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의 원문은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외교사료관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외교부는 올해 공개하는 외교문서의 골자를 명시한 요약본(해제)을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에 게재했다.

[신아일보] 이선진 기자 sj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