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정점에서 바닥까지’… 박근혜의 19년 정치인생
‘권력의 정점에서 바닥까지’… 박근혜의 19년 정치인생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7.03.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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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정계 입문 후 내리 당선된 ‘선거의 여왕’
여성·부녀 대통령으로 ‘처음’ 타이틀 줄줄이 쟁취
세월호와 40년 지기 최순실로 반년도 안돼 ‘추락’
▲ '영어의 몸'이 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표정 변화.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31일 오전 법원의 영장 발부로 ‘영어의 몸’이 되면서 19년 정치인생을 불명예 마감했다.

헌정 사상 첫 여성·부녀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취임한 지 4년1개월여 만에 권력 정점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전날(30일) 오전 10시30분쯤부터 저녁 7시10분쯤까지 약 8시간40분 동안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검찰과 법리 다툼을 했으나 끝내 구속됐다.

박 전 대통령 이름 석 자 앞에는 첫 파면 대통령, 첫 영장실질심사 대통령이란 불명예스러운 수식어에 이어 역대 세 번째 ‘수감 대통령’이란 오명도 추가됐다.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줄줄이 내걸며 화려할 것만 같았던 박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40년 지기 최순실씨에 발목 잡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회한을 남긴 채 막을 내리는 모양새다.

박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취임에 불과 12세 나이로 청와대에 입성, 영애(令愛) 생활을 누렸다. 22세 때인 1974년 모친인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사망해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했다.

▲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장례식에서 영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화·분향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흉탄에 살해되면서 퍼스트레이디 생활도 막을 내리게 됐다. 양친을 잃은 박 전 대통령은 동생인 근령·지만씨와 청와대를 떠났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18년 동안 칩거에 들어갔다.

하지만 1997년 12월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다시 정치에 발담구기 시작됐다.당시 박 전 대통령은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지지를 선언하면서 대중 앞에 섰다.

이듬해인 1998년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 이어 제16·17·18대 대구 달성 국회의원에 내리 당선돼 배지를 달며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위기도 있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패배했다. 하지만 이때 당내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면서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시작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 “정치인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면서 원안을 고집해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자산을 만들었다. 

▲ 2012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자 상황실을 방문, 환하게 웃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를 토대로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승리해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리하여 박 전 대통령은 청와대를 떠난 지 34년 만인 2013년 대통령 취임식 당일 청와대에 다시 발을 들이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집권 동안 단단한 지지층을 기반으로 ‘마이웨이’식 정책과 인사를 고집해 ‘불통’이라는 지적을 계속 받아왔다.

결정적으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박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최씨와의 국정 농단 의혹이 더해지자 박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은 뿌리 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의혹이 처음 제기될 때만 해도 사태가 여기까지 진전되리라고는 누구도 선뜻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관계가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민심 외면은 급격히 심화됐다.

수사를 마친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피의자로 특정했고, 결국 지난해 12월9일 국회로부터 탄핵 소추됐다.

세 달간 직무 정지 기간 동안 박 전 대통령은 줄곧 혐의를 부인했으나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8대0’ 만장일치로 파면을 선고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은 21일 검찰 소환조사와 30일 영장실질심사에 직접 참석해 혐의를 부인했으나 결국 영어의 몸이 돼 삼성동 자택이 아닌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하게 됐다.

[신아일보] 박선하 기자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