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었던 여행… 침몰에서 인양까지 1073일간의 ‘세월호 일지’
길었던 여행… 침몰에서 인양까지 1073일간의 ‘세월호 일지’
  • 박선하 기자
  • 승인 2017.03.23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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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23일 기약 없는 기다림을 끝내고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1073일간 대한민국을 울렸던 세월호 참사를 되짚어본다.

2014년 4월 15일 오후 9시, 수학여행을 떠나는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 일반인 승객 등 476명을 태운 여객선 ‘세월호가’ 출항한다.

다른 여객선과 다를 바 없이 순항하던 세월호는 출발 11시간 49분이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49분 진도군 병풍도 북방 1.8파일 해상 맹골수에서 측면으로 쓰러지며 잠기기 시작한다.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자 “살려주세요”라며 단원고 학생은 전남소방본부 119상황실에 다급히 신고 전화를 걸었고, 신고를 받은 해경 선박은 세월호 근처에 곧 도착했다.

하지만 선내에는 “위험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고 이를 믿고 따른 단원고 학생들과 일반 승객들 대부분은 침몰되는 배 안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했다.

침몰 사고 익일인 4월 17일, 해경은 긴급 브리핑을 열어 세월호 선장 이준석(69) 등 선박직 승무원들을 조사한 결과 침몰 원인은 무리한 변침(變針)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하며 승객 구조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이틀 후인 4월 18일, 더 이상의 추가 구조자 없이 세월호는 단원고 학생 254명과 교사 10명, 일반 승객 30명, 승무원 6명, 아르바이트생 4명 등 304명의 희생자와 함께 완전히 침몰돼 모습을 감춘다.

세월호 참사 발생 한 달 뒤인 5월, 검경합동수사본부는 해경과 달리 세월호의 침몰 원인을 선박 증축에 따른 복원성 부족, 화물 고정 결박 불량 등 복합적으로 분석해 발표한다.

그러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해경 해체를 발표한다. 또 세월호 운영선사였던 청해진해운에 대한 본격 수사를 지시한다.

그 결과 그해 10월, 세월호 이준석 선장에게 사형이 구형됐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한다.

2014년 10월 28일 295번째 세월호 참사 사망자 시신이 추가 수습된다. 하지만 실종자 구조 과정에서 수색작업에 투입됐던 민간 잠수사 이광욱씨가 사망하는 등 안전사고가 발생하자 같은해 11월 정부는 세월호 수색작업 종료를 공식발표한다. 9명의 미수습자를 남긴 채다.

그리고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16일 박 전 대통령은 팽목항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세월호 인양을 공언한다.

이에 2015년 8월, 정부는 중국 최대의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와 세월호 인양 계약을 체결하고 2016년 7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겠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공언했던 선체 인양작업은 기상여건 등을 이유로 6차례 가량 기약 없이 지연되기 시작하면서 미수습자 가족과 유가족들의 한없는 기다림은 또 시작됐다.

그러던 중 해양수산부는 22일 세월호 시험인양을 마치고 밤8시50분께 급히 세월호 본인양을 결정했다.

결국 세월호가 침몰한지 1073일 되는 날인 이날 오전 3시45분, 세월호가 육안으로 관측되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해수부는 24일까지 인양한 세월호 선체를 반잠수선에 선적할 계획이다. 이후 세월호를 실은 반잠수선을 사고 현장에서 87㎞ 떨어진 목포신항만 철재부두로 이동시켜 육상에 거치한다.

세월호가 거치 작업까지 마치면 이곳에서 미수습자 수습과 유품 정리 등 여러 정리 작업을 진행한다.

국민들은 세월호 선체 인양으로 1073일간 기약없는 기다림을 마친 것과 더불어, 그동안 논란이 됐던 침몰 원인이나 참사의 진실도 규명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 (자료=연합뉴스)

[신아일보] 박선하 기자 sunh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