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최근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파격적인 쇄신안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삼성은 어제부터 계열사별 자율경영 체제에 들어갔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전실이 전격 해체됨에 따라 60개 계열사는 이제 이사회를 중심으로 독자경영에 나서게 됐다. 사실상 그룹의 해체라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삼성의 이번 결정은 그룹을 이끌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는 최악의 사태에 대처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봐야 한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전실 해체로 1938년 문을 연 삼성은 79년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지배구조 변화를 눈앞에 둔 것이다.
지난 1959년 삼성 창업주 이병철 선대 회장 시절 직속 비서실에서 시작한 미전실은 이번 조치로 5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맛봤다.
미전실은 삼성그룹이 본격적인 성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그룹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아 삼성은 비서실을 없애고 ‘구조조정본부’를 신설하는 위기대응전략을 마련했다.
구조본이 그룹 신사업 발굴, 전체 역할 조정, 브랜드 관리 등 핵심 업무에 관여해 삼성그룹 위상을 대내외적으로 드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에 비서실, 미전실 등 중앙집중식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면 지금의 ‘글로벌 삼성’은 없었을 것이라는 재계 평가가 나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미전실 역기능을 도외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미전실은 정부·국회를 상대로 로비를 벌이는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등 정경유착의 온상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특히 미전실이 최근 국가를 뒤흔든 국정농단의 주범 최순실 특혜 지원 당사자로 지목된 것은 뼈아픈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사상 초유의 총수 구속이라는 비상사태를 맞은 삼성이 이번 기회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투명한 경영의 틀을 확고히 하겠다는 다짐을 쇄신안을 통해 표출한 것은 크게 박수 칠만 하다.
전인미답(前人未踏)의 길에 첫 발을 내디딘 삼성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존재했던 과거에 비해 예상치 못한 업무상 공백이나 혼란 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삼성 계열사들이 그동안 그룹 우산 아래에서 누렸던 각종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경영난을 겪는 계열사는 그룹 차원의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각자도생의 길을 걸어야 한다.
이밖에 신입사원 채용 규모가 줄어들고 그룹 차원의 사회공헌활동도 사라지게 되는 등 한국경제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에는 부담이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삼성은 연간 매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해당하는 330조원을 웃돌고 전자를 주축으로 금융과 건설, 중공업 등 60개가 넘는 분야에서 국내외 50만 명을 고용하는 명실상부한 초일류기업이다.
그 영향력이 국내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괴력은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다. 삼성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삼성의 환골탈태에 이제 정치권력이 화답할 차례다. 정치권이 대기업에 손을 벌리는 관행을 없애야 기업의 정경 유착이 사라진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