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걱정인데… 수억 원대 수입車 불티 ‘소비 양극화 심화’
월세 걱정인데… 수억 원대 수입車 불티 ‘소비 양극화 심화’
  • 문정원 기자
  • 승인 2017.02.1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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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상·하위 가처분소득 차이 뚜렷
청년층 월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 높아 소비여력 없어

"35년 살면서 서민한테 경기가 좋았다고 느꼈던 적은 한번도 없어요. 취업을 해도 변하는 것은 없고, 매달 월세 걱정하면서 살다 보면 1년이 지나요"

한국 사회에 고착화된 소득 양극화가 소비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장기화되는 경기불황 속에 서민들은 쓸 돈이 없어 아예 지갑을 닫고 월세 걱정을 하고 있지만, 한쪽에서는 서울 지역 웬만한 전세 값을 훌쩍 넘는 수입자동차가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일상화되고 있는 것이다.

1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에 소득 하위 10%가구(1분위)가 의식주 생활을 위해 소비하는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71만7000원으로 전년대비 16% 감소했다. 지난 2003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감소폭을 보인 수치다.

반면 소득 상위 10% 가구(10분위)의 가계가처분 소득은 작년 2분기 잠시 감소했다가 3분기에 3.2%로 확대됐다.

소비의 양극화를 가장 쉽게 목격할 수 있는 곳은 명품시장이다. 경기 침체로 소비가 위축된 와중에도 고가의 수입자동차 시장이 호황을 맞는가 하면 명품 시계 등의 매출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1억원이 넘는 고급 수입차는 2만대 이상 판매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 등록된 수입차 22만5279대 가운데 가격(출시가 기준)이 1억원 이상인 수입차가 2만384대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워도 고소득층의 소비는 위축되지 않는다"며 "수입차 시장만 보면 경기 침체는 다른 나라 이야기 같다"고 말했다.

명품 시계 매출도 급증했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지난해 명품시계 매출은 지난해 34.1% 증가했다. 명품시계 매출 증가율은 2014년 16.3%, 2015년 30.1%를 기록하는 등 매년 성장하고 있다.

그 외 아동용 117만 원짜리 명품 브랜드 책가방, 200만 원짜리 프리미엄 외투, 70만 원짜리 일본제 가죽 책가방 등도 백화점에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유통에서도 최근 10만원 이상의 고가 프리미엄 가방이 잘 팔리고 있다.

반면 월세 걱정으로 먹는 것조차 줄여야 하는 이들에게 ‘명품시장 호황’이란 다른 세상의 이야기다. 당장 주거비 비용 마련에도 숨이 막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식품비 외에 지출은 이들에게 사치가 될 수 밖에 없다.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청년 빈곤 해소를 위한 맞춤형 주거지원 정책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빈곤한 청년가구주 가구 중 4분의 3이 소득의 20% 이상을 월세 등 주거비로 지출하는 '임대료 과부담' 상태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이 30% 이상, 즉 번 돈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쓰는 경우도 빈곤 청년가구주 가구 중 60.2%에 달했다. 이런 비율은 전체 빈곤 가구의 경우 41.1%, 빈곤 장년 가구주 가구의 경우 33.5%였다.

최근 경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조선.해운업계 종사자들은 물론 기업 구조조정으로 고용 불안과 임금체불에 고통을 느끼는 이들은 소비 자체를 아예 생각도 못하고 있는 처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근로자 체불임금 규모는 1조4286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0.0%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체불임금 신고 근로자는 작년에 32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최상위 1% 소득 비중은 영미권보다 낮고 10% 소득 비중은 영미권보다 높다"며 "한국에서는 최상위 1% 집단의 소득 증가 문제보다 중간 이하 저소득층의 소득 부진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아일보] 문정원 기자 garden_b@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