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세' 강봉균, 호남이 배출한 '경제관료' 3인방 중 한 명
'별세' 강봉균, 호남이 배출한 '경제관료' 3인방 중 한 명
  • 고아라 기자
  • 승인 2017.02.01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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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췌장암과 사투 벌여와… DJ 정부 경제정책 브레인으로 유명

▲ 지난 1999년 9월 국회 재경위에 출석해 세입세출결산과 예비비지출에 대해 업무보고를 하던 강봉균 재경부장관.(사진=연합뉴스)
DJ 정부의 경제 정책 브레인이었던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74세.

강 전 장관은 3년 동안 췌장암과 사투를 벌여왔으며, 최근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194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강 전 장관은 사범학교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그는 서울대 상대에 늦깎이로 입학한 뒤 행정고시 합격을 통해 관가에 발을 디뎠다.

노동부 차관과 경제기획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등을 거쳤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경제수석, 재경부 장관 등 요직을 맡았다.

강 전 장관은 IMF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 경제가 몸살을 앓던 1999년 재경부 장관을 지내며 재벌 개혁, 부실기업과 금융기관 구조조정 등으로 위기 극복을 이끈 '경제사령탑' 역할을 했다.

2002년 8월 8일 재보선에서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치에 입문했다.

또 그해 대통령 선거 때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후보의 경제 분야 공약을 주도했다.

그는 16대 재보선 당선에 이어 17∼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강 전 장관은 유달리 아이디어가 많고 두뇌 회전이 빨라 '꾀주머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윤철 전 감사원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와 함께 호남이 배출한 경제관료 3인방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고향인 군산대 석좌교수, 건전재정포럼의 대표를 맡으며 경제 원로로 활동했다.

지난해 4·13 총선 당시에는 새누리당에 입당하며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냈다.

또 경기 대응을 위해 한국은행에 기준금리 인하와 주택담보대출증권, 산업은행 채권을 직접 인수하는 내용의 '한국판 양적완화'를 화두로 내던지기도 했다.

강 전 장관은 최근까지도 경제 원로로서 언론 등을 통해 내수·수출 동반 둔화, 저성장 고착화 등 경기 난국을 헤쳐나갈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9월에는 2년 임기의 대한석유협회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강봉균 전 장관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신아일보] 고아라 기자 ar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