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창궐, 임금체불, 경기불황… 우울한 설 맞이
AI창궐, 임금체불, 경기불황… 우울한 설 맞이
  • 문정원 기자
  • 승인 2017.01.25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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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전파 우려 "모임 포기"…임금체불·고용불안에 "귀성은 사치"
소득↓·물가↑ 팍팍한 살림살이에 "차비·부모님 용돈도 부담"
▲ 설 연휴를 앞둔 한 재래시장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올해 설 명절에는 (AI때문에) 애들 내려오지 말라고 했어요" -평택 육용종계 농장 경영 A씨(70)-

"지난해까지만 해도 배를 타지 않을 때 명절을 맞이하면 고향에 계신 부모님 찾아뵈었지만 올해는 그럴 기분이 아니고, 여유도 없어요" -한진해운 해기사 B씨(43)-

올 설에는 정든 고향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덕담을 나누는 풍경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기세가 꺽일 줄 모르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로 설에 가족끼리 모이는 것 자체에 부담을 느끼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2017년 민족최대의 명절 설을 맞고 있는 우울한 한국의 자화상이다.

#AI피해농가 "AI전파 우려에 가족 못 만나"
AI 피해 농가들은 올 설에 가족들을 부를 엄두도 못 내고 있다. AI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AI피해 농가는 23일 기준 799곳에 이른다.

이들은 수 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 하면서 느낀 심적 고통이 워낙에 큰 상태라 설에 가족들과 만나 심적 위로라도 받고 싶다.

하지만 시골 고향집을 방문했다가 자칫 AI전파로 이어질 우려가 커 올해 가족과 함께 차례를 올리는 것을 포기한 곳이 많다.

경기도 평택에서 육욕종계 농장을 하는 A씨는 "6살, 8살, 10살짜리 세 손자 손녀가 눈에 아른거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해 12월 초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을 받아 닭 2만 마리를 농장 안과 밖에 매몰한 터라 차마 가족들을 부를 수 없었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털어놨다.

#임금체불·고용불안 "고향 찾는 것 자체가 사치"
경기 침체 장기화로 체불임금 규모가 사상 최대 규모로 치솟으면서 체불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들은 설 명절이 반갑지 않다.

임금체불에 고용 자체가 불안한 상황에서 부모님 뵐 면목도 없고, 고향에 내려가는 것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근로자 체불임금 규모는 1조4286억원으로, 전년도보다 10.0% 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체불임금 신고 근로자는 작년에 32만5000명에 달했다.

체불임금 신고 근로자가 30만명을 넘어선 것은 최근 5년 사이 처음 있는 일이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한진해운에서 근무하고 있는 해기사 B씨(43)는 "배에서 내린 뒤 받은 월급과 연차수당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당장 아내와 자녀의 생계가 걱정"이라면서 "명절이라고 고향에 갈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사치로 여겨진다"며 말끝을 흐렸다.

#소득 줄고 물가 오르고 "경제적 부담에 고향 못가"
경기가 악화되면서 도심의 일반 서민들도 설을 앞두고 한숨이 깊다. 계란, 라면, 공과금 등은 줄줄이 오르는 상황에서 소득이 감소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전쟁 같은 삶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3분기(7∼9월) 물가 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전년대비 0.1% 줄었다. 반면 생활과 직결된 물가는 무섭게 뛰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작년 1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00.79로 작년 8월부터 5개월째 오르면서 2015년 7월 이후 17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팍팍한 살림살이에 당장 설에 고향집 내려갈 차비, 부모님 드릴 용도 준비 마저도 부담스럽기만 하다.

한국노총 부산지역본부가 최근 노총 소속 사업장 조합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4.3%가 설 연휴 기간 고향 방문을 계획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고향을 찾지 못하는 주된 이유로 경제적 부담(70.4%)을 들었다. 15.1%는 장거리 이동 때문이라고 답했다.

[신아일보] 문정원 기자 garden_b@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