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법 예외성이 곧 법의 후퇴는 아니다
[독자투고] 법 예외성이 곧 법의 후퇴는 아니다
  • 신아일보
  • 승인 2017.01.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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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장갑순

 
너무 방심했나 보다. AI가 동시다발로 발생했다. 속수무책으로 뚫린 방역망 사이사이로 퍼진 곡()소리가 정유년 새해를 알렸다.

바이러스. 눈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조용한 암살자. 사나운 겨울, 우리는 바이러스의 위력을 처절히 경험하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100일이 지났다. 100일간의 경험은 선명했다. 꽃은 시들고, 한우는 시식코너 정도의 양만큼만 허용됐다. 백화점 농수산물 코너는 외국산이 점령했다. 썰렁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소상공인들의 일상은 무미건조하다.
 
으레 인간사() 100일이면 많은 이로부터 축하를 받는 게 세상이치인데 고통을 견디고 상흔이 아물 때 즈음 다시 찾은 설 명절은 '영란발()' 후속타로 농축산업인들에겐 공포 그 자체다.
 
독일 법철학자 구스타브 라트브루후(Gustav Radbruch)의 "법률은 법률이다"는 말은 폭력적인 법의 속성을 여실히 드러낸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감과 합의는 법의 성공적인 사회 안착을 위한 조건이거늘 어찌 된 일인지 김영란법은 공감은 있는데 합의가 없다.
 
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겠는데 꼭 이런 식이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법하다.
 
김영란법은 적용대상과 피해대상이 다르다. 언론인과 공직자 등은 안 주고 안 받으면 그만인데 그 피해는 농민과 소상공인. 법 시행으로 엉뚱한 이들이 피해자가 됐다.
 
물가는 오르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정치는 서민들을 힘들게 한다. 멀리 반짝이는 것이 가까워져서 출구인가 했더니, 또 다른 터널의 시작이다. 이렇게 끝이 보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김영란법을 손질하라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문이 있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국민권익위원회가 과연 이번만큼은 이름값을 해낼지 모르겠다.
 
고지식한 법을 끝내 사수할 것인가? 아니면 유연성을 겸비한 법의 재탄생을 국민에게 알릴까?
 
법 예외성이 곧 법의 후퇴는 아니다. 최정일 법제처 사회문화법제국장은 '법과 현실'에서 "법은 현실을 무시할 수 없으며 그것에 적응해야 한다"고 했다.
 
인간 존엄성의 원칙, 국민주권주의원칙 등 불변하는 원리가 있는가 하면 사회변화에 따라 적용을 달리해야 할 법 원칙도 있다는 말일 게다.
 
김영란법의 농축산물 예외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곧 법의 후퇴는 아니다. 김영란법의‘3·5·10만 원기준 금액을 상향 조정한다고 해서 불공정한 사회가 되는 것 또한 아니다.
 
지금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불황을 겪고 있다. '소비절벽, 최악의 소비위축'이란 말이 한국경제의 수식어가 된 지 오래다.
 
현실이 이런데도 법이 그러므로, 원칙을 물릴 수 없기에 어쩔 수 없다고만 되뇌는 것이 실질적인 법의 후퇴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문제는 바꾸기를 싫어하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관료주의적인 속성에 있다. 법으로 정했으면 그만이라는 식의 쌍 팔년 대() 개그가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뜩이나 국내외 정세가 우리에게 유리하지 않다. 여기저기 공백이 생기고 균열이 발생했다. 해는 바뀌었는데 문제는 똑같다. 해결책이 없는 게 아닌데 주저한다. 그리고 망설인다. 그렇게 2017년의 1월이 지나고 있다.
 
국가가 국민에게 감격을 주기를 바라진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고통만은 경감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들 어려운 때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1960년대 경제를 위해 민주주의가 희생됐다. 그리고 80년대 이렇게 철저히 희생됐던 민주주의를 우리 스스로 되찾았다.
 
90년대 IMF를 겪으며 국민적 힘을 재확인했고, 미리 면역 주사를 맞았기에 세계금융위기를 그래도 잘 이겨냈다. 그리고 얼마 전 100만 촛불이 청와대를 밝혔다.
 
여전히 심란한 하루하루다. 그래도 위안인 것은 이만큼 성장한 시민 의식이 들불처럼 피어오르고 있어서다. 위정자들의 의식도 이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리로 2017년 새해를 알렸다면 지금은 창의적인 멜로디가 있는 희망곡이 필요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곡가가 정치인이라는 게 필자를 참 서글프게 한다.
 
/서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장 장갑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