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후폭풍] 재계 "수사 대기업 편중" 볼멘소리
[이재용 후폭풍] 재계 "수사 대기업 편중" 볼멘소리
  • 신민우 기자
  • 승인 2017.01.1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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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여자만 처벌은 이례적… 재벌 사정 나선 듯해"
▲ 삼성그룹 서초사옥 (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재계와 법조계에서 특검 수사 방향을 재점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온다.

박근혜 정부 아래에서 행해진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규명하는 수사가 대기업 쪽으로 편중돼 진행되는 모양새를 띠다 보니 마치 특검이 재벌 사정에 나선 듯하다는 재계 측의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박영수 특검팀은 지난달 21일 대치동 D빌딩에서 현판식을 하기가 무섭게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영본부 등 10여 곳에 대한 동시다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출범 첫날부터 삼성을 겨냥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이다.

이날 특검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삼성의 제3자 뇌물공여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사이의 대가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 장충기 차장(사장), 승마협회장을 맡은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 등이 줄줄이 특검팀 사무실에 불려갔고, 지난 12일에는 이재용 부회장이 소환돼 22시간 동안 이어진 밤샘조사를 받았다.

특검팀이 이 부회장을 대상으로 청구한 구속영장은 이날 새벽 기각됐지만, 삼성은 그동안의 수사로 큰 동요를 겪었다.

지난달에 이미 단행됐어야 할 사장단 인사는 무기한 연기되는 등 연말 연초의 사업 일정이 흐트러졌을 뿐 아니라 삼성전자가 9조원을 들여 사들이겠다고 밝힌 미국 전장기업 하만의 인수에도빨간불이 켜졌다.

 연간 매출 300조원이 넘는 삼성그룹의 총수 이 부회장이 특검팀 사무실과 법원, 구치소를 굳은 표정으로 오가는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도됐다.

거칠 것 없이 질주하던 특검의 수사는 법원이 '뇌물 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 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춰볼 때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로 이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수뢰자인 대통령을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증뢰자인 이 부회장만 구속하겠다는 것은 통상의 경우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뇌물을 받았다고 하는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도 '이익 공동체' 수준을 넘어 '동일성'이 인정되는 정도여야 한다"며 "특검 입장에서는 뇌물죄 영장 청구가 불가피하겠지만 법원에서 인정되기가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특검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한 모든 기업을 뇌물죄로 몰아가려고 했던 프레임이 깨진 것이라며 "그동안 특검이 너무 무리했다"고 주장했다.

10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특검의 무리한 수사 때문에 지금 국민은 수사의 목적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이 아니라 기업 총수들을 잡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국정농단이 수사의 중심인데 오히려 재계를 얽어매면서 본말이 전도된 듯 하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특검이 그동안 객관적이고 엄정한 법리보다는 여론에 편승해 보여주기 식 수사를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특검팀은 이 부회장의 구속 무산에도 SK와 롯데, CJ 등 다른 대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할 뜻을 내비쳤다.

법조계 관계자는 "특검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이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 수사에서 성과를 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지금쯤 수사 목적을 되돌아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뇌물죄 구성은 엮으려는 사람의 프레임이지 엮이는 쪽의 프레임은 아니다"며 "경영 현실을 무시하거나 도외시한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로선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기업 입장에선 항상 현안이 있는데 단지 재단 출연을 했고 그 앞뒤로 합병, 인허가 등의 경영 상황이 있다고 해서 모든 걸 뇌물로 보고 접근하는 건 무리"라며 "시간적·논리적 연결을 뒷받침할 물적 증거나 진술이 더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아일보] 신민우 기자 ronofsmw@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