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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국선언에서 탄핵까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촛불 기적'
시국선언에서 탄핵까지…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촛불 기적'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6.12.30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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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30만→100만→190만→232만
평화시위 새 역사, 헌재 심판일까지 계속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작된 촛불 집회가 박 대통령의 최종 탄핵 여부가 결정되는 헌법재판소의 심판일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지난 10월 29일, 최순실 국정농단에 분노한 국민들은 처음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이때 서울 청계 광장에 모인 참가자는 2만여명.

당시 경찰은 그날 순간 최다 운집인원을 3000∼4000명 선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집회 규모는 주최 측 추산 연인원(누적인원) 2만명, 경찰 추산 순간 최다인원 1만2000명으로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특히 이날 집회는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이 많아 이목을 끌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분노만큼 촛불의 숫자도 늘어만 갔다. 11월5일 열린 2차 집회는 서울에서만 주최 측 추산 20만명, 지방을 포함하면 30만명이 참가할 만큼 세가 불었다. 11월12일 3차 집회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 최다인 100만명(이하 주최 측 추산)까지 참가자가 늘었다.

한 차례 숨 고르기가 예상됐던 4차 집회(11월19일)도 한 주 전과 맞먹는 95만명이 전국에 모였고, 5차 집회(11월26일)에는 전국에서 190만명이 촛불을 들고 나왔다.

촛불의 세는 12월3일 6차 집회에서 최고조에 달했다. 주최 측 추산 연인원 232만명, 경찰 추산 순간 최다 43만명이 전국에서 촛불을 켰다.

헌정사상 최대 규모 집회로 기록된 이날, 참가자들은 처음으로 청와대 앞 100m까지 진출해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장관을 연출했다.

 
열기는 뜨거웠지만 역대 그 어느 시위에서도 볼 수 없었던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시위를 연출했다. 어린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은 물론이고 연인, 친지들까지 모여 마치 축제를 즐기는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경찰도 같은 시민이다"라며 보듬는 모습에 각국 외신들도 촛불 민심에 주목했다.

촛불의 이런 열기는 정치권까지 견인했다. 야당은 촛불집회 현장에 당력을 총동원했고, 새누리당 비박계 내에서도 박 대통령을 탄핵해야 한다는 여론이 주를 이루기 시작했다.

결국 국민들의 강한 주권의식은 헌법을 어기고도 묵묵부답이던 대통령의 사과를 이끌어 냈다. 국회에는 국민들의 뜻을 따를 것을 엄중하게 경고하며 '대통령 탄핵'을 받아냈다.

시민들은 크리스마스이브는 물론, 12월31일에도 거리에서 축제 분위기 속에 '대통령 퇴진'을 외친다. 2017년 1월7일·14일에도 행진에 나설 예정이다.

이처럼 세계도 놀라고 부러워한 이번 촛불집회는 인류사에 새로운 시위 역사로 남게 됐다.

 
#촛불 집회 일등공신은 '풍자와 해학'

시민의 분노로 가득 찬 촛불시위 현장을 축제의 장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풍자와 해학이다.

지난 10월29일 진행된 1차 촛불집회부터 병신년 마지막날 진행되는 촛불집회까지 참여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풍자는 무궁무진하다.

구호와 손에 든 피켓 내용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담화 중 일부 반언을 각색한 '내가 이러려고 국민을 했나' 등 '내가 이러려고 OOO을 했나' 패러디가 줄을 이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의 발언은 LED 촛불과 "바람불면 촛불은 옮겨붙는다" 등의 구호로 역이용됐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전 병원을 이용하면서 인기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이름인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는 보도도 패러디 소재가 됐다.

상인들도 나섰다. 군밤 장수는 '탄핵 군밤'을 팔았고, 커피 트럭은 '하야 커피'와 '퇴진 코코아'를 내놨다.

박 대통령과 최씨로 분장해 한 채 포승줄에 묶인 채 걷는 퍼포먼스는 매 촛불집회마다 어김없이 펼쳐졌다.

참가자들은 경찰차 벽은 늘 꽃 스티커로 장식을 했다. 이 꽃 스티커는 끝날 때 다시 직접 제거해줬다.

 
'나만 비아그라 없어', '하야하그라' 등 다양한 풍자 문구를 넣은 깃발을 비롯해 '얼룩말연구회'·'범야옹연대'·'범깡총연대' 등 특정 애완동물의 이름을 딴 깃발도 눈에 띄었다.

탄핵 가결 이후엔 계속 지켜보겠다는 의미를 담아 '끝까지 지켜볼 거다'라고 적고 눈동자를 그린 캔버스도 광장에 등장했다.

흥행몰이에 성공했던 영화 포스터를 패러디한 작품들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근혜와의 전쟁'으로, 영화 '검사외전'은 '비리외전' 등으로 이번 '최순실 국정농단'을 재치있게 풍자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9차 촛불집회가 열린 지난 24일에는 산타복장을 한 참여자들이 대거 등장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촛불을 들고 개사한 캐럴을 따라 부르며 어깨를 흔들었다.

그동안 촛불집회를 주최해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의 한 관계자는 "다양한 국민의 생각이 각종 풍자와 패러디로 이어지며 촛불집회의 감초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이러한 풍자가 평화롭게 진행되는 촛불집회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희망의 빛' 밝히는 촛불,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렇다면 촛불집회의 역사는 어떠했을까.

희생자 추모의 뜻으로 밝히는 촛불이 우리나라의 집회문화에 등장하게 된 최초의 계기는 '미선이, 효순이 사건'을 꼽을 수 있다.

2002년 6월 13일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지방도로에서 갓길을 걷던 심미선·신효순(14·당시 조양중2) 양은 미2사단 소속 가교 운반용 장갑차에 깔려 그 자리에서 숨졌다.

두 소녀의 억울한 죽음에 6월 20일 저녁 미2사단 레드클라우드 앞에서 청소년들은 촛불을 켰다. 사건 약 일주일 뒤였다.

하지만 이 사건의 담당자였던 미군들은 무죄를 받고 미국으로 떠났고, 분노의 촛불은 전국으로 퍼졌다.

그해 11월 30일 저녁 6시 광화문에는 수만개의 촛불이 타올랐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후 촛불의 역사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시위,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 2011년 대학생 반값등록금 집회,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 등으로 이어졌다.

특히 2008년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 결정에 대한 반발심리로 시작된 촛불시위는 5월 2일부터 7월 12일까지 연인원 300여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72시간 장시간에 걸친 마라톤 시위가 등장하는 등 '촛불문화제'라는 것도 처음 시작됐다. '촛불세대'라는 말도 이 때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완전 중단시키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지만 상당한 정치적 효과를 거뒀고, 새로운 시위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오늘날 다시 빛을 다시 밝힌 촛불은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에 의해 '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 광장 민주주의는 실패했던 역사의 경험을 거울삼아 지속적이고 실효적인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숙제를 남겼다.

[신아일보] 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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