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안 가결] 朴대통령, 18년 정치인생 최대 위기
[탄핵안 가결] 朴대통령, 18년 정치인생 최대 위기
  • 전민준 기자
  • 승인 2016.12.0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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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로 탄핵… 마지막 기회는 헌재의 탄핵심판 절차

▲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9일 국회의 탄핵을 받았다.

이로써 헌정사상 두 번째로 국회의 탄핵을 받은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18년 정치 인생의 오점으로 남은 셈이다.

2013년 2월 우리나라 첫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한 박 대통령은 1997년 11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1979년 10월26일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칩거생활을 해오다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방관할 수 없다며 대중 앞에 나선 것이다.

이듬해인 1998년 4월 박 대통령은 대구 달성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뒤 정치인으로 본격 데뷔, 19대 때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그는 역대 대통령의 통상적으로 겪는 레임덕 수준을 넘어 국민으로부터 즉각 하야 요구를 받는 초유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4일 대국민담화에서 언급했듯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줬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추었다”던 최 씨에게 발목이 잡혀 더 손써볼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미래연합 창당 등 혼란기를 거쳐 박 대통령이 유력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시점은 2004년부터다. ‘차떼기’로 상징되는 불법 대선자금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다.

이때부터 박 대통령은 2년3개월 동안 당 대표를 지내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 등에서 당시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40대 0’이라는 완승을 거뒀다.

‘선거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유력 대권 주자로 발돋움한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다. 하지만 서울시장 출신의 이명박 후보와 접전 끝에 패배했다.

이후 박 대통령은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거치며 당내 비주류로 전락한 친박(친박근혜)계를 이끌었고, 2009∼2010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 때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원안을 고수해 이명박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때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더욱 확고하게 다졌으며 이는 2012년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집권 4년 차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박 대통령은 위기를 맞게 됐다. 풍문으로 나돌던 박 대통령과 최 씨와의 관계가 확연히 드러난 것 이다.

박 대통령은 그간 3차례 담화를 통해 “998년 정치 시작부터 오늘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호소했으나 분노한 촛불민심은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쳤다.

여기에 박 대통령은 국회 탄핵으로 모든 권한마저 상실했다. 따라서 박 대통령의 마지막 기회는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절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의 여왕’에서 이제는 최장 180일 걸리는 탄핵심판의 법리 싸움에 18년 정치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신아일보] 전민준 기자 mjjeo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