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치 伊 총리, 개헌 국민투표 패배 시인
렌치 伊 총리, 개헌 국민투표 패배 시인
  • 이은지 기자
  • 승인 2016.12.05 10: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패배 모든 책임 지겠다… 내 경력 여기서 끝"
'기득권 정치인'으로 추락… 포퓰리즘 확산
▲ 마테오 렌치(사진) 이탈리아 총리가 4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서 패배를 시인, 사퇴를 선언하고 있다.ⓒAFP=연합뉴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걸고 추진해온 개헌안이 4일(현지시간)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부결이 확실시 되자 패배를 선언하고 사퇴의 뜻을 밝혔다.

렌치 총리는 5일 자정이 넘은 시각 로마의 총리궁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투표 부결을 위해 활동한 진영이 놀랍도록 명백한 승리를 거뒀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또 그는 "패배에 전면적 책임을 지겠다. 정부에서의 내 경력은 여기서 끝난다"고 말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앞서 렌치 총리는 "이탈리아인들이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 역할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국민투표 부결 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누차 이야기해왔다.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하지만 개혁 이미지가 강했던 렌치 총리는 이번 투표로 '기득권 정치인'으로 추락했고 오성운동 등 포퓰리즘 진영의 목소리가 커지게 됐다.

렌치 총리는 이날 아침이 되면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에게 사퇴 의사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렌치 총리가 추진해 온 개헌안은 상하원에 동등한 권한을 부여한 현행 헌법을 고쳐 상원의원 수를 줄이고, 중앙정부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정치의 고질적인 고비용·저효율 문제가 이탈리아 전체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판단 아래 상원을 지역에 기반을 둔 자문 기구 성격으로 축소하는 개헌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런연합 탈퇴)나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한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맥락을 같이한다.

하지만 이 개헌안은 상원·하원을 모두 통과했음에도 국민투표에 막혀 좌절됐다.

이탈리아 내무부는 이날 오후 11시 투표가 종료되자 홈페이지를 통해 국민투표 개헌안이 찬성 39.68%, 반대 60.32%로 압도적인 표차로 부결된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오성운동은 상원 의원 축소, 중앙정부 권한 강화 등 렌치 총리의 개헌안을 비난하면서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비판론자들은 상원의 축소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훼손해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총리에게 너무 큰 권력을 줘 이탈리아에 파시즘의 악몽을 가져온 베니토 무솔리니와 같은 독재자를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렌치 총리의 개헌안에 반대하는 포퓰리즘 진영에 대해 권한이 강한 지방정부와 결탁해 이권을 챙기려는 속셈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탈리아는 어쨌든 개헌안 부결로 정치, 경제 리스크를 동시에 짊어지게 됐다.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은 이탈리아 은행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개헌 반대에 성공한 오성운동이 이탈리아의 EU 탈퇴를 국민투표에 부칠 가능성도 있다.
 

[신아일보] 이은지 기자 ej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