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제 좀 청약통장 답네
[기자수첩] 이제 좀 청약통장 답네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6.12.01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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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청약통장이 이름값을 좀 하려나보다.

새 아파트를 얻기 위한 기본 요건 중 하나인 청약통장은 한 동안 실입주자들에게 있으나 마나한 것이었다.

알뜰살뜰 유지해 온 통장을 내밀어봐도 평균 수십대 일까지 올라가는 경쟁을 뚫기란 하늘의 별따기였기 때문이다.

말이 좋아 수십대 일이지 사실상 지역과 여건을 따져 살 만한 집을 찾는 이들에게 그 경쟁률은 넘기 힘든 벽이었다.

신규 아파트 당첨 자체가 로또급 행운이었던 얼마전까지만 해도 분양권 프리미엄을 노린 청약이 기승을 부렸고, 부산에선 아파트 한 채에 수백명씩 몰리는 기현상까지 벌어졌다.

서울 강남에선 많게는 억대의 프리미엄이 우습게 붙었으며 투자 목적으로 청약통장을 사고 파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살 집을 구하기 위한 청약이 아니라 팔 집을 얻기 위한 청약이 판치고 있었던 셈이다.

누군가에게 소중한 보금자리가 돼야할 집이 한탕주의의 먹음직스런 먹잇감 취급을 받아온 것.

정부와 업계는 이 같은 행태를 좌시하며 제 배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런 이유로 없애기에는 불안하고 가지고 있자니 딱히 효용성이 없는 그냥 그런 애물단지 같은 통장이 늘어만 갔다.

그런데 최근 실수요자들이 잠자고 있던 통장을 다시 깨우기 시작했다.

분양권 전매를 제한하고 청약요건을 강화한 11·3부동산대책이 나오면서 '진짜 청약통장'이 설 자리가 만들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에서 분양한 신규 아파트 중 상당 수는 한자릿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이 같은 변화를 증명했다.

투자수익을 노린 묻지마 세력들이 대폭 빠져나가면서 견본주택을 찾는 방문자 수는 줄었지만 실수요자들의 당첨 희망은 높아졌다.

이번 대책에 대한 평가는 사실 극으로 갈린다. 강도 높은 규제로 실수요자를 위한 토대를 만들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시장을 완전히 죽일 수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공존한다.

기자는 일단 긍정적 평가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자율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엔 '집'의 본래 가치가 너무 퇴색해 버렸기 때문이다.

집은 어디까지나 집 다워야 하고 청약통장 역시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쓸 모 없을 거라 여겼던 청약통장을 해지했던 몇 년 전 그 날이 조금은 후회스럽기도한 요즘이다.

[신아일보] 천동환 기자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