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 국정교과서 비판 “오히려 역행했다”
역사학계, 국정교과서 비판 “오히려 역행했다”
  • 이현민 기자
  • 승인 2016.11.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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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공동회견 “세계사 흐름 역행… 최근 연구성과도 미반영”

▲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내놓은 국정 역사교과서를 두고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교육연대회의, 한국서양사학회, 고고학고대사협의회는 30일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 논란의 핵심인 한국 현대사 부분의 박정희 통치 시기 외에도 고려 등 전근대사와 세계사 기술에서도 최근 연구 성과를 반영하지 않거나 세계화 흐름에 역행하는 대목이 많다고 지적했다.

먼저 전근대 부분에서 최신 연구성과 미반영, 편찬기준 미준수 등의 문제가 새롭게 지적됐다.

이익주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교과서 공개 3일 전에야 뒤늦게 공개된 편찬기준마저 교과서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면서 고려의 토지제도인 공음전을 예로 들었다.

편찬기준에 ‘공음전은 공로를 세운 관료에게 지급하는 토지임에 유의한다’고 돼 있지만, 교과서에는 ‘고위 관료들에게 지급돼 세습이 가능했던 공음전’으로 기술돼 편찬기준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는 것이다.

또 “고려시대 집필자 3명이 모두 은퇴한 고령의 학자로 최신 연구성과를 소화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며 “2000년대 고려시대사 연구경향은 국제관계사, 친족제도, 여성의 지위 등이지만 이 분야 성과들은 거의 반영되지 않고 오히려 기존 교과서보다 퇴보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를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려는 시도가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강성호 한국서양사학회장(순천대 교수)은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세계사의 흐름과 밀접하게 연관된 한국근현대사를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식으로 서술돼 있다”고 지적했다.

강 회장은 일례로 개화기 조선과 대한제국의 시련과 서구 열강들의 제국주의 관계 설명이 누락됐거나, 1960년대 세계에서 발생한 혁명 중 하나였던 4·19 혁명에 대한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의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맨 마지막 장이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기여하는 한국’이라고 돼있지만, 국수주의적 역사는 글로벌 미래 세대에게 거울이 될 수 없는 것이 자명하다고 지적했다.

세계사적 맥락은 결여한 채 한국이 인류공영에 기여한다는 식으로 논리를 비약할 경우 청년세대에게 협소한 역사관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국정교과서에 대해서도 기존 교과서들보다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역행하는 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세계사 부분에서도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의미를 깨우치려 하기보다는 단순 사실 나열에 그치고 있다고 거론했다.

예를 들어 영국혁명과 미국혁명, 프랑스혁명의 의의와 이념, 역사적 한계 등에 대한 설명이 누락돼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현대사 부문에서 국가폭력과 인권탄압 서술누락도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부소장은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 등 국가폭력사건을 전혀 서술하지 않았다”며 “국가 차원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된 사건임에도 일체 서술하지 않은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사 부분 서술만 보면 역사교과서가 아니라 반공과 안보라는 냉전 논리에 입각한 국방부의 정훈교과서 같다”며 혹평을 쏟아냈다.

김태우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국정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으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꼽았다.

김 대표는 “정부가 사실에 입각한 교과서라고 홍보했지만, 줄어든 현대사 영역에서 박정희 관련 서술은 크게 늘리는 대신 6월 항쟁 이후 30년 세월은 4쪽 안팎에 불과하다”면서 “박정희란 단어를 20회 이상 사용하면서 긍정적 의미로 쓰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역사교사모임의 분석에 따르면 고교 한국사 국정교과서는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세계의 변화’라는 단원에서 박정희 서술분량은 9페이지에 이른다. 미래엔출판사가 출간한 기존 검정교과서의 6쪽에 비해 서술이 늘어났다.

역사교과서 자체 분량이 검정교과서보다 20% 가량 준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에 대한 기술이 늘어난 셈이다.

반면 정부는 역사학계가 내놓는 주장들이 과도하며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해명자료를 통해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독재정치와 그로 인한 자유민주주의의 시련을 분명히 서술했다”고 반박했다.

국편은 “유신체제를 독재체제로 명시하고 당시 국민의 기본권이 대통령의 긴급 조치에 의해 제한됐음을 서술했다”며 “민청학련 사건, 인혁당 사건과 당시 진행된 반(反)유신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도 관련 사진 및 사료와 함께 풍부하게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신아일보] 이현민 기자 hm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