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17곳 중 14곳 "역사 국정교과서 폐기하라"
교육청 17곳 중 14곳 "역사 국정교과서 폐기하라"
  • 이현민 기자
  • 승인 2016.11.29 14: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광주·부산·제주 등 "학교 현장서 채택 않겠다"
울산 "교육부 방침 따를 것"…대구·경북은 "검토할 것"
▲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 (사진=연합뉴스)

지난 28일 역사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이 공개되자 전국 시·도교육감들은 일제히 국정화에 반발하고 나섰다.

전국 17곳 교육청의 교육감 중에서 역사교과서에 반대입장을 나타내는 교육감들은 서울·경기·광주·충북·경남 등 모두 14곳이다.

반면 울산교육감은 국정교과서에 대해 '찬성' 입장을 나타냈고, 대구와 경북교육감은 검토 후 입장을 내겠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이날 교과서 공개 직후 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명의의 입장을 내고 "좌고우면조차 필요하지 않다"며 즉각 중단 및 폐기를 촉구했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이미 국민의 마음 속에서 모든 권력과 권위가 거부된 대통령이 추진한 핵심 정책"이라고 밝혔다.

교육감들은 "국정교과서는 '친일·독재 교과서'라는 내용에 대한 우려에 앞서, 이미 의도와 진행 방식 자체가 반헌법적, 비교육적"이라며 "정당성을 잃은 정책이므로 검토와 여론수렴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국정 역사교과서의 검토 과정에 전면 거부하는 한편, 일선 교사들도 참여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교육청은 특히 당장 2017년 중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역사 과목을 편성한 19개 학교에 대해서는 기존의 검정교과서를 활용하도록 하거나 교육과정을 재편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성명을 통해 "교과서의 국정화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힘겹게 일궈온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퇴행적 행위"이라며 "교육부에서 주도하는 국정교과서 검토본의 검토 과정을 전면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은 "5·18민중항쟁을 왜곡하고,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한 국정 역사 교과서가 학교 현장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광주시교육청은 전체 중학교 90곳의 국정 교과서 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고등학교에서 주문한다면 구입 대행을 거부할 방침이다. 내년 교과과정을 짤 때도 중·고 1학년의 경우 한국사를 편성하지 않고, 중·고 2~3학년은 검인정 교과서를 쓰도록 했다.

민병희 강원도교육감은 "공개된 교과서는 '아버지 정권에 헌정하는 교과서'이자 '책상 위에 깔리는 나쁜 우레탄'이다. 정신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민주주의 발전에도 유해하다"고 못 박았다.

강원도교육청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며 3개 시·도 교육청(전북, 광주, 세종)과 함께 한국사 보조교재 관련 집필 초안의 보완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석준 부산교육감은 "오늘 발표된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장 검토본은 우려했던 바와 같이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등 반헌법적·비민주적·반교육적인 것이어서 교과서로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부산교육청은 교단 지원자료를 제작해 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도록 하는 한편, 교육부의 협조 요청에는 응하지 않기로 했다.

김병우 충북도교육감은 "'복면 집필'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만큼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충북도 교육청의 경우 일선 학교에 국정 교과서 구입 거부를 권고하는 한편, 국정교과서 대응책을 마련키 위한 별도의 태스크포스팀(TF) 구성을 검토 중이다.

이청연 인천시교육감도 "국민의 역사관을 국가가 단 하나로 정해 주입하려는 발상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국정 교과서가 현장에 적용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인천시교육청은 앞으로 인천지역 중·고등학교에 국정교과서가 현장에서 배포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찾아 나선다는 방침이다.

제주도교육청은 국정교과서 검토본에 공개된 4·3사건 기술과 관련해 역사교사로 구성된 TF팀을 구성해 보완조치에 나설 계획이다. 또한 내년 3월까지는 국정교과서가 진행되지 않도록 교육부 규정과 법체계 등을 바꾸기 위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석문 교육감은 "현재 개정 추진되고 있는 국정교과서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역사 선생님을 중심으로 T/F팀을 꾸려 문제를 정리하겠다"며 "이를 통해 공론의 장을 가진 뒤 그 결과를 토대로 의견수렴 절차를 거치겠다"고 대응 방침을 전했다.

이 교육감은 "국정교과서에 제주4·3 발발 원인에 대해 구체적 서술이 나오지 않았고 제주의 절박한 상황에 대한 설명없이 남로당의 무장봉기라고 너무 단순화시켰다"며 "전국 학생들이 4·3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다만 울산·대구·경북은 사실상 '교육부 방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김복만 울산교육감은 이날 주례 간부회의에서 "기존 8권의 한국사 교과서는 오류가 많고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다"며 "교육부가 국정화 교과서와 관련해 한 달가량 각계의 반응을 보고 난 후 오류가 없다고 판단하면 국정교과서를 학생에게 못 권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국정교과서에 찬성 입장을 보였던 이용우 경북교육감은 "찬성 기조를 유지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전체 내용이 공개되고 난 뒤에 한번 더 검토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정치적 중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찬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정부 정책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 학교가 선택할 문제로 학교장 선택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아일보] 이현민 기자 hm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