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
거취문제 중대 기로
헌정사상 첫 피의자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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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민준·조재형 기자
  • 승인 2016.11.2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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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진·탄핵 압박 최고조 달할 듯… 공식 발언기회 통해 반박 가능성

▲ (사진=신아일보DB)
검찰이 20일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공모자'라고 밝히는 초강수를 뒀다.

그동안 '100만촛불'에도 굴하지 않고 업무 복귀 채비를 서둘러 온 박 대통령은 이날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사실상 '국정불능' 상태에 빠지게 됐다.

검찰은 최순실(60)씨 등에 대한 압축적인 조사로 일부 성과를 거뒀다. '미완의 수사'로 남게 됐지만 대통령의 혐의를 밝혀냈다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지검장)는 20일 최씨와 안종범(57)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47) 전 부속비서관 등 핵심 피의자 3명을 일괄 기소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최씨와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의 공소장 범죄사실에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특정했다.
또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직접 인지해 입건했다.

이에 따라 향후 대면조사 등 관련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직 대통령이 피의자로 검찰에 입건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초유의 검찰 수사에 더해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되는 전대미문의 일까지 벌어지게 된 것이다.

검찰은 "박 대통령이 최씨와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 등의 범죄사실과 관련해 상당부분 공모관계가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대기업을 상대로 774억원대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강요한 혐의, 청와대 대외비 문서 유출 혐의 등 핵심 사안에서 지시 또는 암묵적 동의를 했다는 것이다.

▲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 20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최순실 의혹관련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은 기소 전에 이미 박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인지해 정식 사건으로 입건했다.

사건 초반 미온적인 수사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검찰은 박 대통령에 대해 '공범'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피의자 입건을 결행하면서 막판 자존심을 살렸다.

검찰은 박 대통령 입건과 관련해 형법 30조(공동정범)를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조항은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그 죄의 정범으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박 대통령은 최씨, 안 전 수석, 정 전 비서관과 동급의 피의자 신분인 셈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면 단순히 '변명'을 듣는 차원을 넘어서 상당히 강도 높고 밀도 있는 추궁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박 대통령을 향해 제기됐던 '의혹'들이 '혐의'로 드러나면서 확인되지 않은 의혹만으로 물러날 수 없다던 청와대의 주장도 힘을 잃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을 기점으로 야권의 퇴진·탄핵 압박도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이면서 박 대통령의 거취 문제도 중대 기로에 놓이게 됐다.

검찰이 박근혜 대통령의 범행 가담 사실을 인정하면서 탄핵 소추 절차가 가시화되고 있다. 헌법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판에 넘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검찰이 박 대통령의 공모사실을 인정한 것은 기소 여부와 관계없이 탄핵심판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난 이후 정치권에서는 '탄핵' 주장이 커지고 있다.

비박계가 주도하는 비상시국위원회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검찰 수사결과 발표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사태의 공범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본다"며 "대통령이 헌법·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보여지므로 국회는 대통령 탄핵 절차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비상시국 정치회의'에서 야권 대선주자들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부겸, 문재인, 박원순, 심상정, 안철수, 안희정, 이재명, 천정배.ⓒ연합뉴스
야권 잠룡들도 나섰다. 그동안 야당은 탄핵안이 부결되거나 기각돼 되레 면죄부만 주고 끝날 것을 우려해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야당의 입장으로서도 탄핵을 추진하라는 여론의 압박을 견디기 어려워지게 됐다.

당장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김부겸 민주당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 천정배 전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8명은 이날 비상시국 정치회의를 갖고 "박근혜 대통령의 범죄사실이 명백하고 중대해 탄핵사유가 된다"며 "박 대통령 퇴진운동과 탄핵추진 병행을 논의해달라"고 야3당과 국회에 요청했다.

다만 박 대통령 측이 관련 혐의를 완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만큼 당초 예정대로 국정을 재개하는 수순을 밟아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측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지시는 정상적인 통치행위의 일환이었고 이 과정에서 위법행위는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의 이권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도 대통령과의 친분을 내세운 최씨 개인 비리라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공범이자 피의자로 지목되면서 박 대통령으로서도 공식 일정에 나서기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법원의 판단을 거치지 않은 '범죄 사실에 대한 혐의'일 뿐이지만 국민 정서상으로는 '피의자 대통령'으로 간주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 등 일정을 재개하면서 공식적인 발언 기회를 통해 검찰 수사 결과를 반박하고 자신의 입장을 전개할 가능성이 있다.

[신아일보] 전민준·조재형 기자 mjjeon@shinailbo.co.kr, grind@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