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대치 지점에서도 '비폭력·평화집회' 외쳐
각종 패러디 녹아든 피켓·구호에 시민들 호응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 '4차 범국민대회'와 이어진 행진은 전반적으로 충돌 없이 진행됐다.
특히 이날 집회는 박사모 등 박 대통령의 하야를 반대하는 단체들까지 대거 나섰지만 양측이 물리적으로 충돌하거나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 등이 주장한 계엄령도 발생하지 않았다.
청와대 진입로인 내자동로터리(경복궁역 사거리)에 모인 시민들은 경찰과 대치한 채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이어갔지만, 큰 충돌 없이 자정을 넘겨 해산했다.
동십자각 앞과 인사동 삼거리 등 다른 청와대 방향 길목이 있는 곳에서도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탈진자나 경찰에 연행되는 시민도 없었다.
시민들과 경찰은 이따금 혼선이 빚어질 때는 '비폭력', '평화시위' 등의 구호를 외치며 평화시위의 의지를 내비쳤다.
집회 무대나 방송차량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는 시민들도 진보 성향 시민단체 소속 활동가에서부터 자신을 '정치적으로 보수 성향'이라고 소개한 사람들까지 다양했다.
시민들은 정치성향과 관계없이 박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이들을 따라 구호를 외쳤다.
행진에는 합류하지 않았지만 도로변이나 인근 벤치에 앉아 집회를 지켜보며 이따금 시위대의 구호를 따라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구급차가 지나갈 때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길을 터주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 연출됐다.
일부 참가자들은 시위대가 떠난 자리를 돌며 쓰레기를 줍거나 뒷정리를 하는 등 성숙한 시민의식을 선보였다.
심지어 일부 젊은이들은 "나중에 의경들이 떼려면 고생할 것"이라며 시위가 끝난 후 경찰 버스에 어지럽게 붙은 스티커를 떼 주었다. 이들 곁에는 떼어 낸 스티커를 길거리에 버리면 안된다며 비닐 봉지를 들고 걷는 학생들도 있었다.
스티커를 떼는 모습을 본 경찰은 "괜찮습니다. 돌아가셔서 얼른 쉬시라"며 어쩔줄 몰라했다.
폭력시위 대신 등장한 비눗방울도 눈에 띄었다. 사물놀이패의 공연은 행진으로 지친이들의 기운을 복돋았줬다. 시민들은 자유발언 중간에 진행된 가수들의 축하공연을 즐기기도 하고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촛불 파도타기 장관을 연출하는 등 평화집회 분위기를 이어갔다.
광화문광장 집회에 참석해 '행진' 등 노래를 부른 가수 전인권씨는 "박사모가 때리면 그냥 맞아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맞으시는 분들 굉장히 많아요. 세계에서 가장 폼 나는 촛불시위가 되도록 합시다"라고 평화시위를 당부했다.
'봄꽃밥차'가 준비한 '박근혜 그만두유'는 기존 두유제품에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로 재포장해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그만두유', '하야만사성'을 내건 두유 차량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참가자는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머리 위에 선글라스를 얹은 채 최씨를 연상시키는 '코스프레'와 표정으로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무대 위에 올라 '하야체조'를 춰 박수를 받았다.
꺼지지 않는 '인간 촛불'도 등장했다. '인간 촛불' 복장을 한 김지혜 씨는 "박 대통령의 퇴진까지 이 인간 촛불은 절대 꺼지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탈 것이라고 약속드린다"고 말했다.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는 발언을 한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LED 촛불과 "바람불면 촛불은 옮겨붙는다" 등의 구호로 역이용됐다.
시민들은 "우리는 너무 착한 국민"이라며 이날 집회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했고 애초 신고했던 자정을 넘기자 질서있게 집회를 마무리했다.
한편 이날 4차 촛불집회에는 서울 60만명을 비롯해 대구, 부산, 광주, 대전 등 전국 90여 곳에서 100만명(경찰 추산 서울 18만명)이 참여했다.
지금까지 네 번에 걸친 대규모 촛불집회가 법 질서를 지키는 문화제 형식의 축제로 정착하면서 '평화 시위의 교과서'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신아일보] 박영훈·천동환·조재형·전호정 기자 master@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