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금리가 장기간 이어지고 있지만 기업들의 자금은 여전히 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반면 가계의 저축 속도는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3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보면 지난 8월 말 현재 은행의 예금 잔액 1207조7393억원 가운데 금융기관이 아닌 기업이 맡긴 돈은 357조2485억원이다.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8개월 사이 9조1931억원(2.6%) 늘었다.
기업의 은행예금은 지난해 26조7894억원 늘면서 연간 증가액이 2011년(28조1505억원) 이후 4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기업의 저축이 크게 늘어나 것은 불안정한 경제상황 속 소비보다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는 심리가 커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경제주체들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안전한 은행으로 몰리는 셈이다.
과거에도 우리나라 총 예금잔액은 경제가 불안정한 위기 상황에 더욱 크게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 2001년 경기침체 당시 예금 증가율이 전년동기 대비 12.5%로 뛰어올랐고 이듬해에도 12.5%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직후인 2008년에도 예금잔액은 13.8% 늘었고, 이후 2009년과 2010년에도 각각 11.3%, 16.3%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시중통화량(M2) 2380조8620억원(원계열 기준) 가운데 기업이 보유한 금액은 630조7303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40조549억원(6.8%) 급증했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 2년 미만 정기예·적금 등 쉽게 현금화할 수 있는 단기 금융상품으로 구성된다.
반면 가계의 은행예금 증가세는 크게 둔화했다. 올해 1∼8월 기업의 은행예금 증가액은 가계보다 7941억 원 많다.
지난 8월 말 가계의 은행예금 잔액은 567조5986억 원으로 작년 말보다 8조3990억 원(1.5%)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7월부터 두달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 증가액이 작년(28조6598억 원)의 절반을 밑돌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한은의 기준금리가 사상 최저인 연 1.25%로 떨어지면서 가계가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을 수 있는 제2금융권을 많이 찾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예금 이자가 은행보다 높은 제2금융권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아무래도 기업보다 가계가 금리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아일보] 김흥수 기자 saxofon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