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세 '편법 횡행'...대책 없는 'SH·서울시'
장기전세 '편법 횡행'...대책 없는 'SH·서울시'
  • 천동환 기자
  • 승인 2016.10.23 10: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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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들, 철거주택 소유자 대상 '특별공급' 악용
관계 기관 "문제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책임 회피

▲ 서울 강남구 SH본사 전경.(사진=SH)

서울시의 공공임대주택 중 하나인 장기전세가 편법적 입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철거민 주거안정을 위해 시행 중인 특별공급 방식을 일반인들이 의도적 철거주택의 매입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횡행했다.

사업 시행 주체인 SH와 주관 기관인 서울시가 대안 마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가운데, 막대한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제도의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 취지 무색한 '장기전세'

23일 서울주택도시공사(이하 SH, 사장 변창흠)에 따르면 SH는 지난 2007년부터 서울시 거주자 중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을 공급해 오고 있다.

주변 전세시세의 80% 이하 가격으로 입주할 수 있는 장기전세는 2007년부터 지금까지 2만8849호가 공급됐다.

신청자격은 입주자 모집공고일 현재 서울시에 거주해야 하며, 세대원 전원이 무주택자 이면서 일정 수준 이하의 소득 및 자산보유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단 입주 후 2년 마다 재계약 심사를 통해 기준 미달 시 퇴거해야 한다.

장기전세는 이 같은 내용의 일반공급과 함께 보다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는 특별공급의 형태로도 제공된다.

서울시 내에서 이뤄지는 도시계획사업지구에 존재하는 철거주택 소유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별공급분은 조건 충족시 경쟁없이 우선입주할 수 있다. 소득 및 자산 규모와 관계 없이 무주택만 유지하면 최장 20년까지 거주가 가능하다.

문제는 이 같은 특별공급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제도의 맹점을 악용한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전세 입주를 위해 의도적으로 철거대상 주택을 매입하는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도시계획사업 시행을 위한 주민 열람공고일 전까지만 철거주택을 매입하면, 해당 주택 거주 여부나 소유기간과 상관없이 철거주택 소유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최근 이 같은 방법으로 장기전세 입주를 시도했던 익명의 한 제보자(30)는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중개업자로부터 장기전세 특별공급에 대한 상담을 받았는데 '1억4000만원 정도로 입주가 가능한 장기전세 물건을 확보하고 있다'고 했다"며 "철거주택을 구입 후 보상 등의 과정을 거쳐 1년 6개월 안에는 입주가 가능한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 한 포털사이트에 '장기전세' 또는 'SH공사'를 검색하면, 장기전세 특별공급을 홍보하는 수백여개의 블로그들이 노출된다.

한 중개업자는 "사업계획의 변동으로 원하는 물건에 입주가 안될 경우 다른 물건으로 교체해드리고, 원하시면 (철거주택 매입)원금을 보전해서 환불까지 해준다"며 "원하는 지역에 입주가 가능하고, 무주택만 유지하면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어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업체는 노골적 편법을 조장하고 있었다. 웹툰 형태의 홍보물까지 제작한 이 업체는 웹툰 속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도로가 뚫리면 보상가격 말고도 어떤 일이 생기는 줄 알아? 소문내지마! 장기전세아파트 입주권이 나온다고"라며 은밀한 혜택을 홍보했다.

 

▲ 인터넷 포털에 올라온 '장기전세 특별공급' 홍보 블로그.(자료=네이버 캡쳐)

◇ 문제는 있지만 방법이 없다 '나몰라라'

상황이 이렇지만 장기전세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SH는 서울시와 각 구청에 책임을 넘겼다.

SH 공공임대부 관계자는 "제도를 주관하는 곳은 서울시이고 우리는 집행을 할 뿐"이라며 "구청에서 도시계획사업을 하면서 고시하기 전까지는 보안이 유지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고시되기 전에 소유권이 거래되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서울시 역시 본래의 취지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조례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에 대해선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주택정책과 관계자는 "(주택이) 철거됐을 때 거주안정차원에서 시행하는 것인데, 그것을 악용하는 것이니 본래 취지하고는 벗어난다"면서도 "솔직히 행정력이 미치기 어렵고, 이런 것은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재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장기전세 특별공급 제도가 본래 취지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팀 부장은 "장기전세같은 경우 워낙 인기가 좋아 경쟁률도 높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 못들어간다"며 "단순 (철거주택)소유자들은 시세차익이나 개발이익 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거주자 위주로 가야한다는 생각이다"고 강조했다.

[신아일보] 천동환 기자 cdh4508@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