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담패설' 트럼프 대선 최대 위기… 버티기 통할까
'음담패설' 트럼프 대선 최대 위기… 버티기 통할까
  • 이은지 기자
  • 승인 2016.10.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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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위 높은 성적 발언에 공화당도 등 돌려… 지지철회·사퇴압박 쓰나미
▲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 ⓒ연합뉴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11년 전 '음담패설'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사퇴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는 "절대로 그만두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지만 이번 사건으로 트럼프와 공화당이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공화당 내에서도 트럼프가 후보를 사퇴하고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가 당의 후보로 나서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치와 관련된 모든 비평가들은 트럼프의 음담패설은 이미 막말의 한계를 벗어나 성추행이나 강간의 경계선에 이르렀으며 여성혐오나 이른바 '성폭행 문화' (rape culture)를 깨뜨릴 사회적 조치가 필요한 단계라고 비판하고 있다.

◇ 과거 라디오 방송서 딸 이반카 '성적희롱'까지

트럼프가 지난해 6월 대선 출마 이후 폭스뉴스의 여성 앵커 메긴 켈리를 '빔보'(bimbo: 섹시한 외모에 머리 빈 여자를 폄하하는 비속어)라고 부르고 경선 경쟁자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팩커드(HP) 최고경영자의 얼굴을 조롱하는 등 숱한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아왔지만 그를 최악의 궁지로 내몬 것은 워싱턴포스트(WP)가 7일(현지시간) 폭로한 음담패설 녹음파일이다.

이 녹음파일은 트럼프가 2005년 1월 지금의 부인인 멜라니아와 결혼한 몇 개월 후인 그해 10월 녹음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59세인 트럼프는 드라마 '우리 삶의 나날들'의 카메오 출연을 위해 녹화장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녹음파일을 보면 트럼프는 과거 유부녀를 유혹하려 한 경험담을 상스러운 표현까지 동원해 부시에게 설명한다. 트럼프는 특히 여성의 신체 부위를 저속한 표현으로 노골적으로 언급한다.

트럼프는 해당 유부녀의 실명은 언급하지 않은 채 "그녀한테 접근했는데 실패했다. 솔직히 인정한다", "시도했다. XX하려고 (그런데) 그녀는 결혼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3또 "내가 그녀에게 세게 접근했다. 그녀가 가구를 원해 가구쇼핑도 데리고 갔다"면서 "그녀에게 엄청나게 세게 대시했는데 거기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녀는 결혼한 여자였다"고 언급한다.

트럼프와 부시는 녹화장에 도착할 무렵 마중 나와 있던 여배우 아리안 저커를 목격한 후 음담패설을 계속 이어간다.

트럼프는 "와"라는 감탄사를 내뱉은 뒤 "혹시 키스를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경우에 대비해 (입냄새 제거용 사탕인) '틱택'을 좀 써야겠다"면서 "나는 자동으로 미인한테 끌린다. 그냥 바로 키스를 하게 된다. 마치 자석과 같다. 그냥 키스한다. 기다릴 수가 없다"고 자랑한다.

이어 "당신이 스타면 그들(미녀)은 뭐든지 하게 허용한다"고 주장하자 부시는 "원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맞장구를 치고, 이에 트럼프는 다시 한 번 "XX를 움켜쥐고,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며 받아친다.

▲ 도널드 트럼프(왼쪽)가 대선 첫 TV토론 후 부인 멜라니아의 볼에 입맞춤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여기에 미국 CNN은 8일 트럼프가 과거 출연한 미국 라디오 방송에서 여성 비하발언과 성적희롱 등 음담패설을 내뱉은 음성파일을 추가로 공개했다.

공개된 대화 내용에는 딸 이반카 트럼프에 대한 외모 비평은 물론 성적 대상으로 희롱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006년 10월 방송에서 트럼프는 진행자 하워드 스턴과 이반카의 성적 매력을 언급하며 "이반카는 가슴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발언했다. 2004년 9월 방송에서는 스턴이 이반카를 성관계 상대로 언급하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트럼프는 이 방송에서 자신의 개인 성생활을 자랑처럼 늘어놓기도 한다. 또 여성의 나이를 거론하며 "30세가 가장 완벽한 나이다. 35세가 된 여성들을 떠나고 젊은 여성과 데이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여성비하발언에 각계서 분노폭발 '일파만파'

이같은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 전직 공화당 의원 30명이 같은 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에 6일 서명했다.

존 매케인 상원 군사위원장, 폴 라이언 하원의장 등 공화당 내 거물급 인사들은 줄줄이 트럼프 지지철회에 나선 상황이다.

매케인 의원은 "나는 우리당(공화당)에서 지명된 후보(트럼프)를 지지할 수 있기를 원했다"며 "그러나 성적 모욕에 대한 허풍, 여성 비하적인 언사가 폭로된 이번주 트럼프의 행동은 그에 대한 조건부 지지를 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공화당 권력서열 3위인 존 튠(공화·사우스다코타) 상원 상무위원장도 "지금 당장 트럼프는 후보를 사퇴하고 (부통령 후보인) 마이크 펜스가 우리 당의 후보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 레이스 프리버스 의장은 "어떤 여성도 그런 식으로, 그런 내용의 말로 모욕당해서는 안된다. 절대로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 여성단체인 전국 여성 기구(NOW: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 테리 오닐 회장은 " 그처럼 여성에 대한 존중심이 전혀 없고 여성 혐오의 생활습관을 가진 자, 자기 금력을 이용해서 여성들에게 성적 공격을 가해왔다고 장담하는 인간은 미국의 지도자가 될 수 없으며 되려고 해서도 안된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 마이크 펜스 공화당 부통령 후보 유세 중단

제일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진 것은 트럼프의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 후보다.

펜스는 성명을 통해 "남편으로 아버지로서, 어제 공개된 11년 전 비디오에서 트럼프가 묘사한 발언과 행동에 상처를 받았다"며 "나는 그의 말을 용납할 수도 없고 방어할 수도 없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부통령후보가 자신을 낙점한 대선후보를 비판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로, 공화당이 그만큼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펜스는 '공화당 1인자' 폴 라이언 하원의장과의 위스콘신 공동유세를 취소했다고 AP통신 등 미 언론이 전했다

◇ 트럼프 버티기, 부인 멜라니아 "사과 받아달라"

이처럼 음담패설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좀처럼 사과를 하지 않는 트럼프는 대선판에 미칠 파장을 의식한 듯 "개인적 농담이었다"며 즉각 유감을 표명했다.

트럼프는 "이것은 탈의실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그런 농담이고 오래전에 있었던 사적이 대화다. (힐러리의 남편인) 빌 클린턴은 골프장에서 내게 훨씬 심한 말도 했고, 나는 거기에 미치지도 못한다"면서 "다만 누군가 상처받았다면 사과한다"고 밝혔다.

또 8일 새벽에는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린 1분 30초짜리 영상을 통해 "내가 잘못했다. 사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사퇴 여부에 대해서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를 통해 "나는 인생에서 물러서 본 적이 없다"면서 "대선 레이스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나는 지금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도 "내가 사퇴할 가능성은 '0'"라고 단언했다.

공화당 규정상 대선후보가 자진사퇴하거나 불의의 사고 또는 자연사로 사망하는 경우가 아니면 지도부가 강제로 후보를 교체할 수 없다. 트럼프가 끝까지 버티면 후보를 바꿀 수 없는 셈이다.

트럼프의 부인 멜라니아는 이번 논란에 대해 성명을 내고 '용납 못 할 발언'이라면서도 국민이 남편의 사과를 받아줄 것을 호소했다.

멜라니아는 "남편이 사용한 말들은 용납할 수 없고 나한테도 모욕적"이라면서 "(그러나) 이것이 내가 아는 지금의 그 남자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옹호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도자의 가슴과 마음을 갖춘 사람"이라면서 "국민이 그의 사과를 받아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에서 오는 9일의 대선후보 2차 토론회장 연단 준비 작업이 한창인 모습.ⓒ연합뉴스
◇ 과거 성추문 의혹까지… 재기 어려울 듯

트럼프의 굳건함과 멜라니아의 호소에도 지지자들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트럼프의 음담패설 공개 후 다른 과거 성추문 의혹도 잇따르고 있어 트럼프의 재기는 사실상 힘들 것으로 보인다.

폴리티코는 이날 '트럼프의 대선은 끝났는가?'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통해 이번 사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선판에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CNN 방송은 "트럼프캠프의 한 소식통이 '이번 녹음파일 공개는 자칫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했다"고 전했다.

민주당과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은 현재 트럼프의 여성비하 발언을 맹비난하면서 총공격을 하고 있다.

클린턴은 트위터에서 "이것은 아주 끔찍하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파일 논란은 9일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에서 열리는 대선후보 2차 TV토론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차 TV토론 무대에서의 트럼프 태도와 선전 여부, 그리고 이후의 여론 향배에 따라 대선판은 더욱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신아일보] 이은지 기자 ejlee@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