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일본과 한국의 불황, 정부가 중요하다
[칼럼] 일본과 한국의 불황, 정부가 중요하다
  • 신아일보
  • 승인 2016.09.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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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연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시장경제를 이끌어가는 주요 주체는 가계, 기업, 정부다. 경제가 호황일 때는 굳이 정부가 나설 필요가 없어진다. 가계의 왕성한 소비와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만으로도 경제가 잘 굴러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가 나빠질 때에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불경기라는 것이 소비가 얼어붙고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불경기에 정부의 재정확대가 필요하다는 케인즈(J. M. Keynes)식 논리는 오늘날 일본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을 앞지를 기세로 잘 나가던 일본경제가 1990년대 갑자기 어려워지며 20년 장기불황에 빠진 배경에는 정부정책의 실패가 크게 작용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이 주식과 부동산으로 대표되는 거품경제에 빠진 것은 1985년 프라자합의에 기인한다.

당시 심각한 무역적자에 허덕이던 미국은 일본에 엔화가치 상승 압력을 넣었고 일본정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동시에 엔화상승을 통한 수출부진 등 경기침체를 우려한 일본정부는 짧은 기간에 엄청난 돈을 풀었고 중앙은행도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이에 동조했다.

이로 인해 급격히 늘어난 유동성은 결국 주식과 부동산과 같은 자산시장에 몰렸고 3~4배에 달하는 자산가격 폭등을 가져왔다.

이에 놀란 일본정부는 1980년대 말 이번에는 갑자기 돈줄을 조이는 정책을 실시했는데 이로 인해 주식과 부동산시장 거품이 갑자기 꺼지면서 금융시장 혼란과 기업실적 악화가 초래된 것이다.

이렇게 신중치 못한 일본정부의 대응으로 초래된 불황은 그 후에도 미숙한 정책이 이어지면서 장기불황으로 이어졌다.

일본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던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0년 동안 무려 11차례에 걸쳐 135조엔에 달하는 재정자금을 경기부양에 투입했다.

하지만 그 때마다 경기가 조금 좋아지다가 다시 안 좋아지는 사이클이 이어졌고 2000년대 이후에도 10년 간 불황이 이어졌다.

결국은 2012년 아베총리가 들어서면서 그 때까지의 정책규모를 훨씬 뛰어넘는 경기부양책을 내세우며 20년 장기불황의 고리를 끊었다.

무모할 정도로까지 비춰진 재정투입과 양적완화를 내세운 아베노믹스가 조금 더 일찍 나왔다면 일본경제가 보다 빨리 회복되지 않았을까 하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경제의 상황을 보면, 조선이나 해운 등 우리경제의 강점이던 전통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이와 관련된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경영실적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또한 최근의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사태에서 보듯이, 대규모 부채를 지닌 기업들의 추가 부실사태가 나타난다면 주요 은행들의 건전성도 악화될 것이다.

최근 청년실업률이 10%에 근접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의 고용상황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기업이나 금융, 고용 등 경제의 주된 기반에서 유감스럽게도 한국은 과거 1900년대 장기불황에 빠질 때의 일본경제와 유사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정부가 적극 나설 때다. 그러나 현재 보여주고 있는 정부의 불황대책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11조원의 추경예산은 얼마 전 가까스로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는 1990년대 일본정부가 세웠던 연평균 추경 13조엔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규모다.

중앙은행의 보다 적극적인 불황탈피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부동산시장 활성화와 증시 부양책으로 경기를 살리려던 현 정부의 경제정책(초이노믹스)도 과거 일본이 장기불황으로 진입하던 시기의 정책을 답습한다는 느낌이다.

과거의 일본이 겪었듯이 현재의 우리경제도 소비와 투자로 상징되는 내수가 얼어붙고 있다.

청년실업은 물론이고 베이비부머 퇴직세대의 일자리 부족 등 고용상황도 녹록지 않다.

가계나 기업과 같은 민간에만 맡겨서 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가 현실을 보다 심각하게 인식하고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 정부는 20년 장기불황을 겪었던 일본정부의 실패와 성공으로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승연 인하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