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박재혁 의사의 정신으로 갈등극복
[독자투고]박재혁 의사의 정신으로 갈등극복
  • 신아일보
  • 승인 2016.09.09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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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방보훈청 보훈과 황정숙

 
“어제 나가사키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형편이 뜻대로 되어가니 이 모든 것이 그대가 염려해 준 덕분인 듯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즐겁습니다. 그대의 얼굴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박재혁 의사가 김원봉 의사에게 전달한 편지다. 이 편지글은 이미 영화 ‘암살’의 모티브가 되면서 유명해진 글귀이기도 하다. 영화 ‘암살’은 알지만 부산지역 출신의 박재혁 의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오는 9월 14일은 박재혁 열사가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고 당시 악명 높았던 부산경찰서장 하미소토를 암살한 날이기도 하다.

당시 그의 죽마고우였던 최천택 의사가 대구 감옥에 면회를 갔을 때에도 박재혁 의사는 “왜놈 손에 사형당하기 싫어 단식 중”이라며 최천택 의사가 선물로 가져간 달걀 꾸러미를 도로 내어 주었다고 한다. 그 뒤 일주일 만인 5월 11일 박재혁 의사는 형 집행 며칠 전에 옥사했다.

폭탄 사건 직전의 이런 긴박한 상황에 대해서 오택은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범어사로 사람을 보내 어제일(일본 형사들이 오택에게 박재혁 의사 동향에 대해 질문을 했었음)을 전하고서 주의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편지를 가지고 간 사람이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래서 그 밤도 깊도록 무슨 소식이 올까 고대하다가 피곤해 잠이 들었떤 모양인데 꿈에 박형(박재혁)이 붉은 두루막을 입고 공중으로 날아다니는데 조선 사람들은 모두 쳐다보고 떨어질까 걱정을 하고 일본인들은 괴변이라고 총살하자고 모의하여 군경 상인들의 총질을 함으로 나는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고 으악 소리를 지르며 놀라서 깨었다.

~중략~ 갑자기 내 집 문전에 자동차 소리가 나더니 박형이 불쑥 들어온다. 나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여 4,5일 동안 어디서 어떻게 지냈느냐 물은 후 간 밤 꿈 이야기를 하니 박형 역시 어젯밤 2시간에 최종 결심을 했다고 한다.

동래서도 해운대서도 왜경의 조사를 당하였음으로 범어사 원효암까지 피신하여 심사숙고를 하였으나 도저히 호기를 고대할 수 없다.

차일피일하는 동안에 만일 사건이 발각이 되면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악형만 남을 것이니 차라리 대상의 대소를 불구하고 나의 결심을 단행하는 것이 본의라고 단정을 내리고 말았다고 냉엄한 어조로…가족을 나에게 부탁하는 동시에 친지에게는 추호도 피해가 없도록 단독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였다. 나는 부지 중 석별의 눈물이 앞을 가리고 말문도 닫혔다.”

그의 나이 고작 26세. 한 국가의 운명이 그 국가를 살고 있는 어린 청년에게 이렇듯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결심을 하게 만든다.

박재혁 의사의 뜻은 숭고하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전에 조금만 더 잘했더라면 그래서 일제 식민시대를 겪지 않았더라면 수많은 청년들이 가족을 버리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버리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때문에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큰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한다. 수년전 국가부도사태를 맞이했을 때에도 그것이 지금 우리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줄 것인가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녀 세대를 위해서 더욱 신중해야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사실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대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결정에는 지금 당장의 이익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들의 미래도 포함시켜야 한다.

지금 현재 우리는 많은 문제에 봉착해있다. 경제적으로는 한진해운 사태 같은 경제적 문제, 그리고 사드 배치와 같은 국가 안보의 문제, 그리고 외교적 갈등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지혜롭게 풀어가야 할 문제들이다.

아직 우리도 정답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의 지혜를 모을 수 있지 않은가. 제2의 제3의 박재혁 의사가 되지 않아도 될 미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현명하게 갈등을 극복해야 하겠다.

/부산지방보훈청 보훈과 황정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