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현장 남산 통감관저터에 日 위안부 '기억의 터'
경술국치 현장 남산 통감관저터에 日 위안부 '기억의 터'
  • 전호정 기자
  • 승인 2016.08.29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만여명 모금 참여… 피해자 247명 새긴 작품 설치
박원순 "'위안부' 사죄·반성이 먼저…정부 태도 한심해"
김복동 할머니 "소녀상 철거 대가 천억원이라도 안 받아"
▲ 29일 오후 서울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제막식'에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를 비롯한 참가자들이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글귀가 4개 국어로 새겨진 '세상의 배꼽' 조형물의 가림막을 걷어내고 있다.ⓒ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취지로 서울 남산에 조성된 위안부 '기억의 터'가 29일 공개됐다.

'아직 못 다 이룬 광복'이라는 의미를 담아 서울시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는 이날 기억의 터 제막식을 열었다.

제막식은 106년 전 일제가 강제로 맺은 한일합병조약을 공포해 나라를 잃은 경술국치일에 열려 그 의미를 더했다. 1910년 8월 29일은 일제의 의해 한일합병 조약이 강제 체결,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시대가 시작된 날이다.

기억의 터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다.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세계적 인권이슈로 부각됐음에도 그 아픔을 기리고 기억하는 공간조차 없다는 현실에서 기획됐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는 시와 함께 기억의 터 부지를 물색했고 남산공원 통감관저터를 최종장소로 정했다.

특히 범국민 모금운동 '기억의 터 디딤돌 쌓기'를 통해 초등학생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1만9755명이 모금에 참여했다.

기억의 터에는 기존의 '통감관저터 표지석', '거꾸로 세운 동상'과 함께 '대지의 눈', '세상의 배꼽' 두 작품이 설치됐다.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해외 추가 신고자 포함)의 성함과 할머니들의 증언이 시기별로 새겨졌다.

세상의 배꼽은 윤석남 화가의 작품과 함께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글귀가 한글, 일본어, 영어, 중국어로 함께 기록됐다.

▲ 29일 오후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공원 통감관저터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억의 터' 제막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복동 할머니가 '대지의 눈' 조형물을 어루만지고 있다.ⓒ연합뉴스
제막식에는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최영희 기억의 터 추진위원장 등 120여명이 참석했다.

최영희 추진위원장은 "'일본의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해 우린 아직 해방되지 못했다'는 할머니들께서는 아픈 역사를 딛고 자신뿐 아니라 지금도 전쟁에서 희생당하는 아동과 여성을 위해 인권 평화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면서 "기억의 터는 그러한 할머니들의 뜻을 국민들이 기억하고 이어가겠다는 약속의 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치일에 열린 이 행사에는 슬프고 억울하고 고통스러운 식민 통치의 날들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터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특히 "일본이 유럽에서의 독일과 같이 진정한 사죄와 반성의 토대 위에서 온전한 배상과 조치를 취하기는 커녕 군국주의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반성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더 한심한 것은 정부의 태도"라며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고 진정한 사과다. 정부가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박근혜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문제 삼기도 했다.

김복동 할머니 역시 김영삼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힘을 보태주지 못하고 할머니들을 괴롭힌 경우는 없다"고 박근혜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김 할머니는 또 일본 일각에서 나오는 소녀상 이전 목소리와 관련해 "지금이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소녀상이 있는 곳이 자기네 땅도 아니고 우리 땅에 세운 소녀상인데 일본이 치우라 할 게 뭐 있나. 소녀상 철거 대가로 주는 돈은 백억원이 아니라 천억원이라도 안 받는다"고 꼬집었다.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화해·치유 재단'이 일본 측에서 출연하기로 한 10억엔을 피해 할머니들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데 반대해 왔다.

한편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는 이날 제막식을 끝으로 해산한다. 앞으로 기억의 터 관리와 운영은 서울시가 맡을 예정이다.

[신아일보] 서울/전호정 기자 jhj@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