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사상 첫 무산위기까지… 여야 '추경전쟁' 점입가경
헌정사상 첫 무산위기까지… 여야 '추경전쟁' 점입가경
  • 이원한·김가애 기자
  • 승인 2016.08.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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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태풍 루사 추경은 사흘 만에 처리… 2000년 국회 파행으로 석달 훌쩍 넘기기도
새누리 "당내 강경 세력들이 흔들어"… 더민주 "조기통과 위해선 제대로 된 청문회 먼저"

▲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굳은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연합뉴스
추가경정 예산안 처리와 조선업 구조조정 청문회 등 여야의 협상이 점입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여야3당은 23일 이틀째 원내 협상을 중단한 채 추경안 처리 무산에 대한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 전쟁통에도 처리됐던 '추경'… '신속'이 관례

추경은 말 그대로 본예산 외에 추가로 편성하는 예산이다. 편성 요건은 국가재정법상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이다.

6·25 전쟁 도중에도 추경안은 통과됐다. 민주화 이후 추경이 없었던 해는 1993년, 2007년, 2010~2012년, 2014년 뿐이다.

'시급성'을 이유로 편성되는 추경은 비교적 신속하게 처리되는 게 관례였다.

2002년 당시 태풍 '루사'의 수해복구를 위해 제출된 4조1000억원의 추경안을 국회는 사흘 만에 통과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여야의 정쟁에 휘말려 장기 표류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2000년 6월29일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은 당시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원내 교섭단체 구성 문제와 관련한 국회법 개정으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며 석달을 훌쩍 넘긴 10월13일에 처리됐다.

2008년 6월20일 제출된 추경안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의 후폭풍으로 8월19일 원(院) 구성이 이뤄지면서 국회가 지각 출범하면서 9월18일에야 추경을 통과시켰다.

금융위기의 수습을 위해 이듬해인 2009년 28조9000억원으로 대규모 편성된 '슈퍼 추경'은 3월30일 제출돼 정확히 한 달 만에 통과됐다.

지난달 26일 제출된 올해 추경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남은 절차를 고려했을 때 일러야 오는 26일 처리할 수 있다.

한 달을 넘기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추석 연휴 전 자금집행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정부·여당이 추경을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추경 폐기는 헌정 사상 유례가 없다.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새누리 "합의 더민주가 파기"… 더민주 "'최종택 트리오' 증인 출석 먼저"

새누리당은 여야 3당 합의를 더불어민주당이 파기해 의회 민주주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며 처리 지연의 모든 책임은 야당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3당 대표가 만나 국민 앞에서 서명한 합의서가 완전히 휴짓조각이 됐다"며 "당내 강경 세력들이 흔들면 대국민 약속도 깨는 민주주의가 어딨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현재 의원은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생 예산을 증인 협상문제로 거부하는 야당은 진정 민생을 살피도록 조속히 추경안 처리에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더민주는 구조조정 청문회에 경제부총리를 지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등 '최종택 트리오'가 반드시 증인으로 출석해야만 추경안 통과에 협조하겠다는 방침이다.

우상호 원내대표는 "추경안의 조기통과를 위해 제대로 된 청문회가 성사돼야한다"며 "천문학적 국민 세금을 집행하는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한 분들의 해명과 제대로 된 검증 없이 국민 세금만 지출해달라는 것에는 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 원내대표의 '야당 내 특정 강경세력' 발언을 겨냥해 "제대로 된 원인규명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해야한다는 국민 모두가 강경세력이냐"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기 원내대변인은 "최경환, 안종범 두 사람이 5만명의 실직자보다 중요하냐"며 "이정현 대표는 청와대 출장소장이 아닌 집권 여당의 대표임을 명심하라"고 비난했다.

국민의당은 일단 추경안 심의부터 재개하고 증인 협상을 하자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은 긍정적 반응을 보인 반면, 더민주는 부정적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호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지금 예결위를 진행하지 않으면 추경이 어렵다"며 "9월2일 내년도 예산안이 넘어오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26일 이전에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신아일보] 이원한·김가애 기자 whlee@shinailbo.co.kr, gakim@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