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
[칼럼]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
  • 신아일보
  • 승인 2016.08.2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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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일 익산경찰서 보안계장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가 열렸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속정도 비슷하다. 이웃을 보면 반가이 인사 나누고 정이 많아 나눠 주는 것을 좋아한다. 거기에다 흥이 많아 콧노래를 부르고 어울려 놀 줄 아는 멋드러진 한민족임이 분명하다.

3·8선이 생기기 전만해도 우리 민족은 한양을 넘어 개성에 다다르고 두만강을 건너 중국과도 교역을 위해 수시로 넘나들며 단일 영토의 주권을 행사하며 세계 속에 우뚝 솟을 준비가 돼있던 자유 대한민국이었다.

하지만 냉전시대의 남북이념의 차이로 인해 우리 대한민국은 비운의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러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신생어가 쓰여지고 여전히 한민족이라 부르지만 우리 국민들의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는 남북분단의 아픔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북한이탈주민의 남한사회의 정착문제이다.

정부는 이들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이를 근거로 지역협의회를 구성하고 의료, 교육, 주택지원책 등을 마련했고 경찰조직은 보안협력위원회 등을 통해 다각적인 탈북민의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다.

먼저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의 기본원칙을 보자. ‘제4조 1항 대한민국은 보호대상자를 인도주의에 입각해 특별히 보호한다.’ 이만큼 외적인 요소를 보더라도 탈북민에 대한 관심과 법률적인 지원 등은 세부규칙까지 정해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탈북민 정책에 대한 성공적인 기대를 하기는 이르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 탈북민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인식과 탈북민 스스로 느끼는 소외감 등은 우리가 바라는 이상과는 다소 거리가 먼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 중에는 물직적인 요소보다는 심리적인 사회적 인식과 대우 즉, 탈북민들에 대한 우리들의 인권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

과거 염전노예 등과 더불어 최근 섬여교사 성폭행 사건 등 우리 사회 음지에 깔려진 인권에 대한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킬 만큼 중요하고 예민한 문제로 인식해 이에 대한 재발 방지와 대책마련에 정부와 국민들은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탈북민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은 아직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탈북민의 문제를 한 개인의 문제와 동일시해 다문화가족 등과 같이 치부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다소 아쉬움이 남을 때가 많다.

아직 우리나라는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이다. 우리 국민들이 편히 쉬고 잠자는 이 시간에도 북한의 테러 및 공작이 이 사회를 언제 어떻게 긴장의 국면으로 만들지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 국민들이 통일이 되길 바라고 있지만 탈북민 3만명 시대가 도래한 지금, 통일 전 단계로서의 이 시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을 새로이 점검하고 반성해 볼 필요성이 있다.

탈북민의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에 대한 보호조치 등은 한 개인을 위한 봉사활동이 아님을 우리는 좌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들의 껴안고 보듬는 데에는 단순한 측은지심이 아닌 국가와 국가 간에 화합과 상생을 위한 대인륜적인 국가사업임을 우리는 인식해야 하며 우리의 의식 있는 행동이 더욱 더 필요한 시기인 듯 하다.

인종은 같지만 세월이 흘러 다른 이념 속에 살아온 탈북민들과의 만남은 우리는 한마음 한가족이라 말하지만 실천은 다른 경우가 많다.

어렵고 험난한 인생역경을 거쳐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 그들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고 이질적인 행동은 우리 자신과 우리 대한민국이 통일로 가는 길에 역행하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인권의식이 높아진 만큼 탈북민에 대한 인권도 그만큼 상향됐는지를 말이다.

그것은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우리나라가 판단할 것도 아니며 통일 대한민국이 이뤄졌을 때 우리 모두의 마음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소일 익산경찰서 보안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