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공무원은 살아있는 신문고다
[독자투고] 공무원은 살아있는 신문고다
  • 신아일보
  • 승인 2016.08.0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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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동두천시청 회계과 김혜란 주무관

 
1401년 조선 태종은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대궐 밖에 북을 달아놓게 하고 치도록 하였다.

조선 초기에 상소·고발하는 제도화되어 있었으나, 최후의 항의·고발 시설의 하나로 신문고를 설치하여, 임금의 직속인 의금부에서 이를 주관, 북이 울리는 소리를 왕이 직접 듣고 북을 친 자의 억울한 사연을 접수 처리하도록 한 것인데 억울함을 호소하려는 자가 해결이 안 되는 경우에는 신문고를 직접 울리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의 신문고는 본래 취지와는 달리 주로 서울의 관리들에게만 사용되었고, 평민이나 노비, 또 지방에 거주하는 사람은 사용빈도가 매우 낮았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은 상황이 달라졌다. 국민들의 불편함이라는 북소리가 들리면 즉시 달려가 억울함을 해결해 주는 공무원, 즉 살아있는 신문고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제는 그 누구라도 자신의 이야기를 호소할 수 있는 통로가 생긴 셈인데, 문제는 최선을 다해 신문고의 역할을 하는 공무원들이 ‘악성민원’에 시달리는 상황이 예삿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업무 특성상 민원인과 직접 접촉해야 하거나 민원발생 여지가 많은 일부 부서는 직원들 사이에서 기피대상 부서로 꼽히고 있다.

2015년 경기복지재단의 연구 조사에 따르면 사회복지담당공무원의 90% 이상은 언어적 폭력을 경험하였고, 60%는 민원인으로부터 신체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결과가 있을 정도로 무방비 상태로 악성민원에 노출되어 있다.

한편에서는 일부 비리 공무원들로 인해 공직사회를 비판할 때 늘 등장하는 ‘복지부동’, ‘비리’, ‘철밥통’이란 말들로 퇴근시간도 미뤄가며 밤새 일하는 대다수의 공무원들을 더욱 움츠려들게 하고 있다.

법 테두리 안에서 맡은 바 역할을 다 할 수 있도록 독려해도 시원찮을 마당에 동네북 신세가 된 것이다.

그 동네북도 사람인지라 타인의 감정에 쉽게 상처 받고 욕설에 눈물을 훔치며 때리면 멍이 든다. 공복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감내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나 실컷 두들겨 맞고도 ‘아프다’는 말 대신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하는 현실이 문득 슬퍼진다.

국민의 말을 직접 듣는 일선 공무원에게는 안정적인 공무 환경을 조성하고, 공공을 위해 일한다는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뒷받침을 한 후 엄격한 평가를 통해 공과를 다루고 비리를 척결해야 공직은 유능한 사람들로 채워질 텐데 안으로는 악성민원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비난에 시달리는 걸 보면 이쯤 되면 나라의 신문고가 화를 해소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는 생각이 든다.

찰리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다.

시민들이 멀리서 언론을 통해, 타인을 통해, 항설을 통해 접하는 공무원들은 각종 태만과 비리로 얼룩져서 비웃음을 당하는 존재로 보일지 모르나 지금도 대다수의 공무원들은 묵묵히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며 각종 악성 민원에 대해서도 ‘죄송합니다’를 먼저 외쳐야하는 가련한 비극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공무원은 반드시 필요한 동네북, 즉 살아있는 신문고이다. 공직자로서 억울한 이들의 하소연을 듣는 것은 분명히 그들이 해야만 하는 의무이다.

하지만 그 동네북이 찢겨져 진정한 신문고의 역할을 할 수 없게 만든다면 이 또한 분명히 우리 사회 전체의 손해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경기 동두천시청 회계과 김혜란 주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