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인 대우조선해양의 '총체적 부실'
충격적인 대우조선해양의 '총체적 부실'
  • 박정식·고아라 기자
  • 승인 2016.06.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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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감시망 틈타 분식회계 1조5천억원… 산은은 '방조'
뒤늦은 '무관용' 적용… 경영비리 수사 '인터폴'로 확대
▲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초대형 골리앗 크레인 위로 검은 구름이 걸려 있다.(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의 직원 비리와 방만 경영이 충격적일 만큼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적발한 분식회계 규모는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산업은행의 관리·감독 시스템은 전혀 작동하지 않았고, 대우조선해양 경영진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문어발식 경영'으로 피해를 눈덩이처럼 키웠다.

조선·해운업 부실이 국내 경기를 뒤흔들 만큼 미치는 여파가 크기 때문에 공적자금을 회수할 의무가 있는 산업은행에 대한 책임론도 급부상하고 있다.

'180억 횡령' 직원에 사장은 뒷돈 의혹

16일 대우조선에 따르면 지난 8년간 회삿돈을 180억원 가까이 빼돌려 아파트와 상가, 외제차, 명품 등을 산 대우조선 전 차장이 임모(46)씨가 최근 경찰에 구속됐다.

경남 거제경찰서는 15일 임씨가 살던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에서 시가 10억 원 상당의 시계 20점과 현금 5억1000만 원 등을 압수했다.

임씨는 2012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횡령했고 이후 1억여 원을 받고 명예퇴직했다.

임씨는 허위 거래명세서를 만드는 단순한 수법으로 회삿돈을 횡령했지만, 대우조선에는 감사 등 내부 관리감독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은 비리 직원의 뒤를 봐준 임직원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8년간 회삿돈 180억 원 가까이 빼돌린 임 전 차장이 마구잡이로 사들인 시가 10억 원어치의 명품 시계와 가방, 귀금속들. (사진=거제경찰서)
수사 당국은 남상태 전 대우조선 사장으로부터 사업상 특혜를 받는 대가로 수억원의 뒷돈을 준 혐의로 휴맥스해운항공 대표 정모씨에 대한 구속영장도 청구했다.

남 전 사장은 재직 기간 대학 동창인 정 회장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일감을 몰아준 의혹을 받고 있다.

대우조선은 2007년 정 대표가 대주주로 있는 업체에 선박블록 해상운송 사업에 대해 10년간 독점적 지위를 부여하는 수의 계약을 맺고 이후에도 운임을 높여 정 대표에 거액의 수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남 전 사장이 이 계약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남 전 사장과 정 대표 사이에 금품이 오간 것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 부실 앞 '눈 감은' 산업은행

경영진부터 일반 직원까지 회삿돈을 '눈먼 돈'처럼 다룬 이유는 대우조선이 사실상 '주인 없는' 회사이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있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최대주주로 있으면서 경영관리단을 파견했지만, 대우조선의 경영 부실을 막을 의지나 능력이 부족했다.

실제로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정황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대우조선해양은 해양플랜트 40개 사업의 총 예정원가를 2013년 5700억원, 2014년 2조187억원 낮추는 방식으로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을 높게 부풀렸다.

영업이익 기준으로 1조5342억원의 분식회계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이 같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은 산은이 제대로 감독만 했더라면 2013년에 확인할 수 있었다.

산은은 정부나 은행의 지분이 50% 미만인 업체에 대해서도 '재무이상치 분석시스템'을 활용해 재무상태를 분석하도록 했다.

하지만 2013년 2월 당시 정부와 산은의 지분이 48.61%였던 대우조선해양은 분석 대상에서 빠졌다.

또 산은은 경영 개선을 위해 대우조선해양에 지시했던 사항마저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산은은 2011년 11월 국회 국정감사의 지적과 경영컨설팅 결과를 바탕으로 대우조선해양에 ‘수주 사전심의기구’를 설치해 운영하도록 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래 놓고 산은은 이행 완료로 처리했다.

이에 따라 2012년 5월~2014년 11월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해양플랜트 13건 중 12건은 사전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여기서 발생한 영업손실만 해도 총 1조3000억여원에 달했다.

▲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남문에서 근로자들이 점심 시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규모 부실 속에서도 '성과급 잔치'

이처럼 대우조선해양의 손실이 이익으로 왜곡되면서 임직원들에게만 막대한 성과급이 지급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임원들에게 2014년 48억원, 지난해 17억원 등 총 65억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직원들 또한 성과배분상여금 명목으로 2013년 1057억원, 2014년 927억원 등 총 1984억원을 받았다.

이런 도덕적 해이는 3조2000억원대 영업손실이 드러난 지난해 7월 이후에도 계속됐다.

대우조선해양은 4조2000억원 규모의 신규 자금을 산업은행으로부터 지원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지난해 말 무려 1176억원을 임직원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했다. 이 중 877억원은 성과상여금 명목이었다.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 등은 성과상여금 성격이 포함된 격려금 지급이 부당하다는 판단을 내려놓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대우조선이 2013~2015년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실적이 고꾸라진 상황에서도 성과급을 챙기며 자기 배 불리기에만 몰두한 노조도 문제인 것으로 드러났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상반기에만 3조1998억 원의 영업손실을 내 경영정상화 방안을 마련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 격려금은 1인당 평균 946만 원이 지급됐다.

이는 2014년 격려금 746만 원보다 26.8% 증가한 수준이다.

검토도 없이 자회사 '문어발' 확장 

'문어발식' 경영도 확인됐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자회사 17곳에 투자해 모두 9021억원의 손실을 봤다.

심지어 플로팅 호텔 등 5개 사업의 경우에는 이사회 보고, 의결 절차도 생략하거나 허위 보고를 한 사실까지 적발됐다.

이 과정에서 산은 출신 대우조선해양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이사회에 참석했지만 모든 안건에 찬성하는 등 거수기 역할만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치권과 채권단에 관련된 인물들이 상담역, 고문, 자문역 등의 이름으로 경영자문을 하고 고액의 자문료를 챙기는 일도 허다했다.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6명의 전·현직 대통령을 촬영해 '대통령 사진가'로 이름을 알린 김재환 란스튜디오 회장도 2011년 11월부터 2013년 11월까지 경영자문의 명목으로 9690만 원의 급여를 받았다

대우조선은 과거에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조전혁 전 국회의원 같은 정치권 인물을 사외이사로 선임했고, 지난달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한 조대환 변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해 '정피아 낙하산' 논란이 일었다.

▲ 대형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대우조선해양 본사 압수수색을 마친 뒤 밖으로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공적자금은 '눈먼 돈'… 대우조선,  내부비리 차단 나서

이런 가운데 대우조선에 투여된 공적자금은 7조원이 넘는다. 전국민에게 10만원씩 지급하고도 남는 돈이다. 반대로 국민 1당 10만원씩을 대우조선해양의 회생을 위해 걷은 셈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직원의 거액 횡령 사건을 계기로 임직원들의 금품수수 행위 등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처벌하기로 하는 등 유사 비리를 근원적으로 차단하기로 횄다.

지난해 5월 정성립 사장 취임 이후 감사 기능 강화에 나서 종전 19명이었던 감사실 직원을 24명으로 늘렸다고 밝혔다.

또 증원된 감사실 직원들은 물품구입 부서를 비롯해 거래가 오가는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주 대상으로 상시 감사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고 대우조선 측은 덧붙였다.

대우조선은 금품수수·횡령·이권개입 및 부정청탁 등 3대 비윤리 행위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한 번이라도 적발되면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사규에 따라 엄정 처벌하기로 도 했다.

그러나 이미 대우조선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닥으로 추락한 상태여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편 대우조선해양의 경영 비리를 파헤치는 수사당국은 국외로 도피한 핵심 수사대상에 대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적색수배' 발령을 추진하고 있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법무부와 검찰은 최근 프랑스 리옹 인터폴 사무국에 "건축가 이창하(60) 디에스온 대표의 친형 이모씨를 적색수배해달라"는 요청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인터폴은 이씨의 혐의사실을 고려해 조만간 수배령을 내릴 방침으로 알려졌다.

지상파 방송 TV 프로그램에 건축가로 등장해 이름을 알린 이창하 대표는 2006∼2009년 대우조선해양건설 전무를 지내며 일감을 미끼로 하도급 업체에서 뒷돈 3억원을 받았다. 또 개인회사에서 69억원을 횡령했다.

법조계에선 인터폴 국제 공조로 이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및 경영 비리를 파헤치고 있는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의 수사가 새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신아일보] 박정식·고아라 기자 jspark@shinailbo.co.kr, ara@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