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핑크코끼리’ 사건으로 드러난 국민 의식 수준
[기자수첩] ‘핑크코끼리’ 사건으로 드러난 국민 의식 수준
  • 조재형 기자
  • 승인 2016.05.24 17:19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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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추모 현장에서 시민 충돌은 물론 폭행 사건까지 발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건해야 할 추모집회가 변질된 것도 모자라 마녀사냥식 폭행까지 이어져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추모는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 건물 화장실에서 피의자 김모(34)씨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 A씨(23)를 기리는 의미에서 마련됐으며 시민들이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 피해 여성을 애도하는 포스트잇을 붙이면서 시작됐다.

피해자를 추모하는 화환도 잇따라 설치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포스트잇과 추모행렬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살해당했다’며 ‘여성혐오’를 확산시키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사건 당일 경찰은 피의자가 “평소 여성에게 무시당해 범행했다”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고 여성혐오 범죄라는 분석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사건이 여성혐오 시각에서 비롯된 범죄라는 주장에 반기를 든 시민들이 거리로 나오면서 이들 간에 충돌을 빚었다.

지난 20일 강남역 추모장소에 일베(일간베스트)회원으로 알려진 사람이 핑크색 코끼리 의상을 입고 나타나면서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그는 “육식동물이 나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는 동물이 나쁜 겁니다…선입견 없는, 편견 없는 주토피아 대한민국. 현재 세계 치안 1위지만 더 안전한 대한민국 남·여 함께 만들어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추모현장을 찾았다.

이후 시민들은 이 남성을 둘러싸고 거세게 항의하며 “일베 회원이 아니냐”며 “일베 회원이 아니면 당당히 탈을 벗어라”라면서 탈과 옷을 벗기려고 했다. 이어 시민들은 그의 핑크 코끼리의상을 찢는가하면 잡아끌고 발로 구타하는 등 무차별 집단 폭력을 행사했다.

피켓의 내용을 읽어보면 틀린 말이 없다. 그러나 왜 시민들은 마녀사냥을 했을까.

단지 이 성난 군중들은 그가 ‘일베’를 한다는 이유로,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같은 행동을 저지른 것이다.

경건한 추모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탈을 쓰고 간 것은 책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자신과 의견이 다르다고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하고 폭력을 행동하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8년 전 광우병 시위가 한창일 때 한 선배가 특정언론사의 기자라는 이유만으로 가진 장비를 전부 빼앗기고 집단 린치를 당해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진 적이 있었다. 그때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경찰은 22일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을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규정했다.

하지만 발표된 이날에도 강남역 추모현장에선 ‘여성혐오’를 통한 범죄라 부르짖으며 추모의 본질을 흐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무엇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는지 묻고 싶다. 

[신아일보] 조재형 기자 grind@shinailbo.co.kr